그래픽=김현지 기자 |
"투기꾼 잡으려다 부동산 잡아… 폐지해야"
"부동산 살리려다 서민만 울려… 유지해야"
- 정부·여당·건설업계 "없애야"
"이 불황에 분양가 인상 못해, 이미 유명무실… 규제 풀어야"
상한제 적용 안하게 되면 재건축 단지도 수익 증가
- 야당·일부 시민단체 "있어야"
"건설사들 온갖 핑계대며 슬금슬금 분양가 올릴 것… 서민·실수요자들만 피해봐"
4월 임시국회 與野 충돌 예고
최근 주택시장의 분양가 상한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분양가 상한제란 정부가 아파트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 넘지 못하게 규제하는 제도다. 정부 여당과 건설업계는 "침체된 시장 상황을 감안해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거나 제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건설업체들이 지속적으로 분양가를 올려 서민 피해가 클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상한제 폐지는 새 정부 부동산 정책의 첫 시험대가 됐다. 박근혜 정부가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정상화'를 앞세우면서 분양가 상한제 폐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려 있다. 지난 27일에는 야당 반대로 국회 통과가 한 차례 무산된 상태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투기 우려 지역에만 상한제를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가 야당의 공세를 받았다.
◇정부 "분양가 상한제 없애 시장 정상화 추진"
건설업계는 "시장 침체로 유명무실해진 규제 제도를 없애자"고 주장한다. 이 제도의 골자는 건설사가 분양가를 마음대로 높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불황으로 분양가를 낮추지 않으면 소비자가 외면하는 상황이 됐다. 2008년 전국에서 3.3㎡당 평균 분양가는 1086만원에서 작년 839만원까지 23% 떨어졌다. 한국주택협회 김동수 실장은 "요즘 시장에서 분양가를 높일 건설사는 없다"면서 "규제 완화 기조를 상징하는 조치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규제를 풀어 시장의 불안감을 줄이자는 측면에서 찬성이다. 단, 공공성 강한 주택과 투기과열 우려가 있는 지역 등에 대해 제한적으로 상한제를 적용하자는 입장이다. 정부는 작년에 이런 내용의 법안을 만들어 국회로 보냈다.
일부 지역에서는 상한제가 없어지면 주택개발 수익성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도심의 재건축 단지나 입지가 좋은 신도시 등 소비자 선호도가 높아 분양가가 오르더라도 살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가 2011년 수도권에서 분양한 150가구 규모 재건축 단지를 분석한 결과도 이를 잘 보여준다.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았을 때 수익성을 10%가량 높일 수 있었다. 전용면적 84㎡ 주택을 기준으로 일반분양 물량에 대해 평균 분양가를 1520만원 올려 분양 수익이 커진다는 것이다. 일반분양 물량을 모두 팔 경우, 조합원 1인당 개발 분담금은 1200만원가량 줄어든다.
국토부 박선호 주택정책관은 "재개발·재건축 사업 수익성이 높아지면 도심에 양질의 주택 공급이 가능하고, 사업이 활발해져 국가가 매몰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야당 "분양가 올라 서민 피해"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상한제 폐지에 반대한다. 결국 분양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가 1998년 주택경기를 살리기 위해 분양가 자율화 정책을 썼을 때, 서울 아파트 값은 3.3㎡당 평균 512만원에서 2002년 919만원, 2006년 1546만원까지 뛰었다.
높은 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끌어올리고 다시 분양가가 더 높아지는 연쇄 반응이 나타났다고 야당은 분석하고 있다. 지금도 상한제가 없어지면 건설사가 슬금슬금 분양가를 높이고, 결국 서민·실수요자들이 분양시장에서 밀려나게 된다는 주장이다. 참여연대 김남주 변호사는 "분양가 자율화 정책 이후 8년간 분양가는 오르기만 했다"며 "건설사들이 좋은 건축자재를 쓴다는 둥 온갖 구실을 들어 분양가를 올리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나 건설업계의 기대와는 달리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반응도 많다. 현재 건설사가 이미 상한제 기준보다 싸게 분양을 하고 있다. 또 시장 침체의 주요 원인은 규제가 아니라 세계경기 위축, 성장 둔화 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상한제를 폐지하면 나중에 주택가격이 급등할 때 저지할 방법이 사라진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재건축·재개발 단지에서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야당은 반박한다. 분양가를 좀 더 비싸게 책정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비싼 분양가 때문에 집이 팔리지 않으면 조합원 부담이 역으로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 둘러싼 논란 확산
박근혜 정부는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한 주택 정책을 펼칠 계획이어서 정치권 논란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야당은 "부동산 활성화가 일반 서민의 삶이랑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취지로 날카롭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분양가 상한제 탄력 운영 내용을 담은 법안을 놓고 4월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에 계류 중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안도 본격 논의될 경우 치열한 대립이 예상된다. 대표적인 대출 규제인 DTI(총부채 상환 비율)와 LTV(주택 담보대출 비율) 조정 문제까지 거론될 경우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더 깊어질 수 있다.
☞분양가 상한제
건설사들이 아파트 분양가를 정할 때 땅값과 건축비를 감안해 일정 수준 이상을 넘기지 못하도록 정부가 규제하는 제도.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3월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한 투기 억제 수단으로 첫 시행 됐다. 부동산 침체기에는 불필요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