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사업이라던 ‘용산개발’이 과거로 사라진 지 달포가 흘렀지만 사업지에 포함됐던 서부이촌동은 여전히 차가운 땅이었다. 사진은 사실상 방치돼 있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부지 전경과 서부이촌동 일부. [윤현종 기자/factism@heraldcorp.com] |
도시개발지구 지정해제이후
거래 회복 기대했지만…
“요새 어떠냐” 묻는 사람들뿐
“지은지 19년 된 84㎡ 아파트
7억5000만원 주고 누가 사겠나”
낙후된 환경 탓 동네뜨는 주민도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던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사업’이 과거로 사라진 지 한 달여가 흐른 13일. 지난달 10일 도시개발지구 지정 해제로 6년간 사실상 묶였던 부동산거래가 움틀 줄 알았던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은 여전히 차가운 땅이었다. 새로 문을 연 상점은 더러 눈에 띄었지만 손님이 별로 없었다. 10월 초 이곳에 가게를 차린 한 상인은 “장사가 안 된다”고 털어놨다. 사람들도 떠나고 있었다. 개발 신기루의 상처가 아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곳의 부동산 시장은 회복 착시현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0여개 정도 되는 공인중개업소마다 걸려오는 전화는 확연히 늘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업 해제’ 뉴스를 본 문외한들의 호기심어린 문의였다. 서부이촌동 A공인중개 강현식(가명) 대표는 “다짜고짜 ‘거기 요새 어떠냐’고 묻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막연히 개발을 예상하고 들어오려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파트 가격이 여전히 비쌌다. 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들의 집값을 여전히 ‘최고점’수준으로 여긴다고 동네 공인중개사들은 귀띔했다. 강 대표는 “인프라가 태부족한 곳에서, 준공된 지 19년 된 전용 84㎡(공급 34평형) 아파트를 7억5000만원이나 주고 누가 사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거래가 안 되는 건 당연했다. 서울시ㆍ국토부 자료와 신고되지 않은 현장거래 내역에 따르면 10월 이후 서부이촌동에서 팔린 집은 중소형 아파트 3채 정도다. 가격은 평균 5억4000만원 선. 다가구, 연립 등은 거래 자체가 없다. 아직 80% 이상의 집들은 최근 경매낙찰가로 시세가 잡히고 있었다.
사업이 완전히 무산되면서 서부이촌동을 뜨는 주민도 늘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곳 생활환경 때문이다. 대부분은 높은 가격 부담을 감내하며 옆동네인 동부이촌동으로 옮긴다. 중개업소에서 만난 이재희(가명ㆍ43) 씨는 서부이촌동의 아파트를 2억5000만원에 전세로 내놓고 동부이촌동의 4억원대 전세를 구하러 왔다. 서부이촌동C공인 관계자는 “11월 들어 전세를 놓은 고객 중 동부이촌동 전셋집 찾는 분들이 30% 이상”이라고 말했다.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과 맞물려 서울시를 상대로 한 주민손해배상 소송도 답보상태다. 주민참여율이 저조해서다. 4월부터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한우리에 따르면 소송 참여자와 소송금액 모두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대신 소송대상이었던 서울시는 남은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유일하게 기댈 곳(?)이 된 모양새다. 지난달 31일 서울시가 이곳에 만든 현장지원센터 때문이다. 한규상 센터장은 “첫 1주간 98건의 상담을 접수했고 이 중 30건은 주민채무조정과 관련돼 있다”며 “지역민의 심리적 안정에 중점을 두고 일자리, 재생사업 등 입체적인 지원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근 10년간 지속된 이곳 사람들 간 반목을 치유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해보였다. 동네 골목엔 ‘보상계획 및 이주대책기준 상담’이라고 크게 쓰인 현수막이 1년 넘게 그대로 걸려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가 걸어놓은 개발 신기루의 상처였다.
윤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