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위 뉴타운 11구역 |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서울시는 뉴타운 재개발 구역 148곳의 해제가 결정됐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606곳인 뉴타운 재개발 실태조사 대상구역 중 24% 수준이다.
물론, 서울시가 뉴타운 구역을 해제할 권한은 없다. 148곳이 마침내 해제가 된 것은 뉴타운 해제를 요구하는 뉴타운 조합원들의 실력과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추진위나 조합 등 추진주체가 있으면 해제되기 위해 주민 50%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추진위가 꾸려지지 않은 단계면 30%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148곳의 조합원들은 저마다 구역별로 이런 규정을 맞춰 가까스로 해제에 도달한 것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 장기침체, 과도한 뉴타운 기부채납률, 높은 뉴타운 분양가로 인한 미분양 우려, 조합원 추가분담금 폭탄 등의 상황을 따져볼 때 개발을 지속하면 조합원의 손해가 크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뉴타운 재개발 구역 중 24%만 해제가 결정됐다는 것은 그만큼 해제 동의서 걷기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지금 현재 뉴타운 재개발의 미래를 장밋빛이라고 하긴 어렵다.
뉴타운 재개발 구역의 해제 시점이 법 개정을 통해 올해 1월에서 내년 1월로 1년 연장됐기 때문에 향후 1년간 뉴타운 재개발 구역은 개발이냐, 해제냐를 놓고 조합원들과 조합 사이에 극한의 갈등이 벌어질 전망이다.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조합과 조합원들의 갈등이 벌어진 배경은 현실 인식 차이에서 기인한다. 개발의 운전대를 잡은 조합 측은 가급적 개발을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조합원들은 왕십리뉴타운 등 앞서 진행된 뉴타운의 사례를 볼 때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실패가 명백하다고 보고 반대를 주장한다.
조합이라는 법인과 조합원 개개인의 모임인 비대위가 싸움을 벌일 경우 법인이 절대 우세한 분위기다. 소송전이 벌어질 경우 법인은 공금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조합원 개개인 모임인 비대위는 사비를 털어 변호사비를 내는 처지다.
해제된 148곳을 제외한 나머지 76%의 지역에서 진행되는 싸움의 결과가 뉴타운의 미래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 서울시 등 지자체는 이 상황에서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히려 남은 1년 동안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가 적극적인 행위자로 뉴타운 ‘막장’에 개입해 최악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 반대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 중 첫 번째 우선순위로 뉴타운의 과도한(약 35%) 기부채납률을 20%대로 내리는 것을 꼽고 있다.
기부채납률이 35%라는 것은 쉽게 말해 뉴타운의 1개 구역의 대지면적이 5만㎡인 경우 1만7500㎡를 도로나 공원 부지로 공공에 헌납한다는 것이다. 이 부지를 3.3㎡당 1200만~1300만원 대인 시세로 환산하면 약 7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한 뉴타운 해제위원회 관계자는 “기부채납률을 20% 수준으로만 낮춰줘도 조합원들이 손해를 안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자기 돈으로 도로나 공원을 만들게 한 현재의 규정이 가혹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강남권의 재건축이 수익이 나는 이유는 아파트만 헐고 지으면 되기 때문”이라며 “강북 뉴타운은 자기 집을 헐고 아파트도 짓고 도로도 만들고 공원도 만들다 보니 강남보다 형편은 못한 상황에서 개발에 대한 분담금은 훨씬 높게 내는 구조가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정치권, 지자체가 할 수 있는 두 번째 우선순위로는 뉴타운 해제동의서 비율을 현재의 50% 선에서 30% 선으로 낮추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조합 설립을 위해 조합원 75%의 동의가 필요한데 30%가 개발을 반대하면 조합이 구성될 원인이 제거된다는 논리다.
뉴타운이 서울 전 지역에 걸쳐 있을 정도로 대규모로 지정됐고, 뉴타운 지정에는 정부, 정치권, 지자체가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에 결자해지의 측면에서라도 이들이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큰 틀이 바뀐다면 개발 반대 입장을 개발 재개로 돌릴 수 있다는 비대위 조합원들이 대다수다. 이대로만 방치하다가는 개발도 안 되고, 지역이 슬럼화되는 현상을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