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값이 많이 떨어졌지만 분당은 여전히 경쟁력 있는 신도시로 평가받는다.
정자동 파크뷰 등 고가 단지들은 분당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신도시 위기론’까지 등장하면서 수도권 신도시들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한때 서울, 수도권 주택난을 해소하는 역할을 했지만 자족기능이 없어 ‘베드타운’으로 전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신도시는 영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매경이코노미는 새해 부동산 시리즈로 수도권 신도시 경쟁력을 집중 해부해봤다.
▶연재순서
➊ 분당 ➋ 일산 ➌ 평촌 ➍ 산본 ➎ 중동 (1기 신도시)
분당신도시는 수도권 1기 신도시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정부는 집값 안정, 주택난 해소를 위해 1989년 4월 1기 신도시 개발안을 마련했다. 당시 주택 공급 부족으로 수도권 아파트 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주택 200만가구 건설을 위해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개 신도시를 개발했다. 분당에는 1964만㎡(594만평) 면적에 9만7000가구가 지어졌다.
분당은 출범 초기부터 강남 대체 신도시로 인기를 끌었다. 1991년 시범아파트가 입주한 이후 쾌적한 환경과 좋은 교통·교육여건, 생활편의시설 등을 갖춰 ‘천당 아래 분당’이라 불릴 정도였다. 분당 집값도 서울 강남권 상승세와 맞물려 고공 행진했다. 2005, 2006년에는 판교 개발 후광에 힘입어 연간 20%가 넘는 매매가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당 집값은 2007년 이후 하락세가 완연하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11% 이상 하락했다. 요즘에도 하락 폭은 줄지 않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MB정부가 출범한 2008년 2월 22일부터 2011년 10월 18일까지 분당 132㎡ 이상~165㎡ 미만 아파트가 21.2% 떨어졌다. 이매동 아름마을태영아파트의 공급면적 161㎡ 매매 시세가 7억5000만원까지 올랐지만 지금은 6억3000만원 수준까지 하락했다.
판교 입주로 대형아파트 가격 하락
분당 집값이 이렇게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주택 경기가 침체됐고 아파트가 오래된 데다 판교 입주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분당 아파트가 노후화되면서 수요가 빠져나간 탓이 크다. 분당 아파트는 입주 20년이 다가오면서 낡고 오래된 아파트라는 인식을 주고 있다. 엘리베이터나 배관시설이 오래됐고, 평면구조나 단지배치 등도 새 아파트가 몰려 있는 판교와 대비된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일부 분당 아파트 값은 같은 평형의 강남 아파트보다 비쌌다. 당시 분당 아파트는 새 아파트이고, 강남 아파트들은 15년 정도 된 낡은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파트 노후화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리모델링이 추진 중이다(박스 기사 참조).
둘째, 판교신도시 입주다. 2009년 5월부터 판교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분당 아파트를 처분하고 판교에 입주하려는 대기자들이 늘어 판교와 분당의 집값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베벌리힐스’ ‘로또’로 불렸던 판교 아파트 입주자 상당수는 분당 주민들이었다. 기존 분당 아파트를 팔거나 전월세를 주고 판교로 입성하는 수요가 상당했다. 게다가 판교를 비롯해 주변에 용인의 각종 택지개발지구, 수원 광교신도시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등장하면서 분당 인기가 주춤해졌다. 주변 시세보다 싸고 입지도 분당보다 좋은 강남 세곡, 서초 내곡지구에 보금자리주택이 대거 들어설 예정인 것도 악재다.
셋째, 일본처럼 서울 도심 집중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탓이다. 일본 도쿄에서 서쪽으로 약 30㎞ 떨어진 신도시인 다마뉴타운의 경우 우리나라 신도시 분양 때처럼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세대’가 대거 이동해 가구를 꾸렸다. 하지만 지금은 올드타운의 대명사가 됐다. 다마신도시의 계획인구는 34만여명이지만 현재 인구는 20만명 선에 불과하다. 신도시가 외면당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젊은 층이 직장과 가까운 도쿄 도심에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도심에 비해 의료, 쇼핑, 문화 등 편의시설 이용이 불편한 점도 젊은 층의 ‘탈신도시’ 요인으로 지적된다. 일본 다마신도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분당신도시도 올드타운으로 전락하고 도심 집중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분당의 대표상권인 서현역 일대. |
문제는 앞으로다. 분당 집값은 어떻게 될까. 분당은 수도권에서 최고 입지를 갖춘 신도시로 꼽힌다. 서울 강남에 인접해 있고 수도권 경부축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판교 입주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판교 아파트 입주는 2009년부터 시작됐는데, 2011년 이후로는 입주가 거의 끝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2008년 잠실에서도 엘스, 리센츠 등 2만여채에 달하는 재건축 아파트들이 거의 동시에 입주하다 보니, 인근 집값과 전셋값이 대폭 하락했다. 하지만 전세가는 또다시 회복됐고 매매가도 큰 폭으로 뛰었다.
분당 집값은 떨어지고 있지만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높은 편이다. 일부 단지의 경우 전세가 비율이 70%를 넘는 곳도 나오고 있다. 분당 서현동 효자대우 전용 53㎡형은 매매가가 2억5000만~2억8000만원 선, 전셋값은 1억7000만~1억9000만원 선으로 전세가 비율이 72% 수준이다. 그만큼 실수요가 탄탄하다는 뜻이다.
실수요 지표인 전세가가 오르면 시차를 두고 매매가도 오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당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분당신도시에 지금 투자해도 괜찮을까. 지역별로 보면 신분당선을 이용할 수 있는 정자동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사장은 “분당은 다른 신도시와 달리 인근 판교에 첨단업무시설들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각광받을 수 있다. 신분당선 개통으로 강남 접근성이 향상된 정자역 일대가 유망하다”고 설명했다.
상품별로 보면 일반 아파트보다는 상가·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을 추천했다. NHN, SK C&C 등 기업들이 대거 자리 잡아 상가·오피스텔 수요가 탄탄한 덕분이다. 양용화 외환은행 부동산팀장은 “주택 시장이 침체돼 역세권 소형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투자하는 게 좋다. 다만 오피스텔은 요즘 분양가가 높아 수익률이 낮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상가는 정자역, 서현역 상권이 역시 주축이다. 분당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상권인 서현역은 광역교통망이 좋고 관공서, 금융사, 일반 기업 수요가 상권을 든든하게 지원해준다. 서현역은 서울과 주변 경기지역으로 오가는 광역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다. 임대료는 1층 기준 33㎡당 보증금 5000만~1억원, 월세 200만~400만원 수준이다. 정자역 카페거리는 주변 기업 수요가 풍부해 유동인구가 많다. 임대료는 1층 기준 33㎡당 보증금 5000만~1억원, 월세 300만~350만원 수준. 카페거리 메인 점포는 월세가 더 비싼 곳도 흔하다. 미금역은 인접한 분당뿐 아니라 용인 수지 수요도 많이 유입된다. 판매시설과 먹자상권의 유흥, 학원, 의료시설이 고루 갖춰져 있다. 아웃렛 매장은 평일에도 붐비고 오피스텔 수요가 많아 퇴근 시간대에 저가 의류, 화장품, 액세서리 매장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장은 “아직까지 판교는 기반시설이 미비하고 상가 분양가가 높아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려면 5년 이상 걸릴 수 있다. 당분간 서현, 정자, 미금 등 분당 주력 상권이 판교테크노밸리 수요를 흡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도 분당신도시는 주거, 상권 부문에서 탄탄한 위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최현일 열린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당신도시는 경부축에 위치해 서울, 지방을 연결하는 입지적 장점이 있고 강남과 인접한 배후 신도시 역할을 한다. 신분당선, 분당선 연장선 건설이 지속되면서 수도권 남부 접근성이 높아져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자동 한솔주공5단지 1억원 시세차익 기대
리모델링 규제는 얼마나 완화됐나.
2011년 12월 23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리모델링 사업 추진 시 전용면적의 10% 범위 안에서 가구 수 증가와 일반분양을 허용했다. 또 전용면적 85㎡ 이하 평형은 최대 40%까지 수평증축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전용 85㎡ 이하 단지의 경우 최대 40%까지 수평증축하면서 30%는 가구당 전용면적을 늘리고, 나머지 10%는 일반분양할 수 있다. 다만 수직증축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1기 신도시 중 분당이 최대 수혜지라는데.
분당이 리모델링 사업지로 관심을 끄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용적률(건축물 연면적을 대지면적으로 나눈 비율), 건폐율(1층의 건축 바닥면적을 대지면적으로 나눈 비율) 차이 때문이다. 분당은 용적률이 평균 180% 정도로 150%대 용적률인 단지도 상당수다. 그만큼 일반분양분을 확보할 여지가 크다는 뜻이다. 용적률, 건폐율이 높거나 대지면적이 좁은 아파트는 수평·별동증축이 어려워 사업성이 개선되기 어렵지만 용적률, 건폐율이 낮고 땅이 넓은 분당 저밀도 아파트 단지들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리모델링 단지별로 다르겠지만 늘어난 가구 수를 최대 10%로 잡고 일반분양하면 사업비가 종전보다 대략 30% 이상 줄어들 수 있다.
어떤 단지들이 수혜를 입을까.
수평·별동증축이 가능한 용적률 180% 미만, 건폐율 15% 미만인 아파트 단지들 사업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당신도시에서 리모델링 조합이 설립돼 사업 속도가 빠른 정자동 한솔주공5단지, 야탑동 매화공무원1단지와 용적률, 건폐율이 낮은 구미동 하얀주공5단지, 서현동 시범삼성한신 등이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정자동 한솔주공5단지(1158가구) 조합원 분담금은 3.3㎡당 250만~315만원 선으로 예상되는데 이번 규제 완화로 전용 51㎡(22평)의 경우 분담금이 6600만원에서 4600만원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 이 경우 현재 시세 3억6000만원을 포함해 4억원 정도면 전용 약 70㎡ 단지를 소유할 수 있다. 주변 정자동 아이파크1단지(2003년 입주) 전용 80㎡ 매매가가 6억~6억5000만원 선인 걸 감안하면 1억원가량 시세차익이 기대된다.
분당 야탑동 매화공무원2단지(1185가구)의 경우 전용면적 59㎡를 85㎡로 리모델링하면 가구당 1억5000만원 정도 분담금을 내야했다. 추가 증축을 통해 10%를 일반분양하면 분담금은 30% 정도 줄어든 1억원 선이 된다. 이 경우 59㎡ 매매가가 3억40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4억4000만원 정도로 전용 85㎡를 소유할 수 있다. 주변 야탑동 현대아이파크(2003년 입주) 매매가가 공급면적 3.3㎡당 1800만원 수준(공급면적 153㎡ 8억2000만~8억9000만원)이므로 1억6000만원 시세차익(전용면적 85㎡ 기준, 6억원(33평×1800만원)-4억4000만원)을 기대할 수 있다.
가구 분할 효과는 얼마나 있을까.
이번 가구 분할 허용으로 165㎡(50평) 아파트를 갖고 있는 경우 200㎡(60평)로 증축하거나 100㎡(30평)짜리 2개로 쪼갤 수 있다. 만약 60평으로 증축하지 않고 50평으로 둘 경우 가구당 늘어나는 면적(10평)을 모두 모아 일반분양분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분담금은 더욱 줄어든다.
사업 속도는 빨라질까.
리모델링 규제가 상당수 풀려 사업 속도가 빨라질 수 있지만 모든 단지가 혜택을 보는 건 아니다. 조합 설립 이전 단지들은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2012년 3월 17일 이후로는 조합 설립 인가 이후 시공사를 선정하게 돼 있어 추진위원회가 조합설립동의서를 받고 설계도서 작성 등을 진행한 이후 시공사를 뽑아야 한다. 사업비 조달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면 사업 추진을 낙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분당에는 15층 이상 중층단지에 5층짜리 저층아파트 몇 동이 섞여 있어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이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있지만 리모델링이 더 유리하다.
그 이유는 첫째, 리모델링 연한은 15년인 데 비해 재건축 연한은 40년이나 된다. 둘째, 분당의 경우 용적률을 채우지 못한 단지가 많더라도 용적률이 150% 이하에 불과한 서울 개포주공, 잠실주공5단지조차 재건축 사업성을 따지는 상황이라 분당 단지들은 재건축 실익이 낮다. ※ 도움말 = 현대산업개발, 쌍용건설 리모델링팀
[김경민 기자 kmkim@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