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축빌라 잘못 샀다가는…‘현금청산’ 경고등
중앙일보 | 2022.01.11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신속통합기획 민간재개발 사업의 1차 후보지 21곳을 발표했다. 사진은 창신동 주택가 모습. [연합뉴스]
“새집에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현금청산이라니요. 비싼 아파트 못 사서 할 수 없이 빌라를 산 제가 투기꾼인가요?”
지난해 8월 서울 노원구 상계5동에 건립 중인 빌라(전용 49.5㎡)를 매입한 조 모(34) 씨는 새집에서 살아보기도 전에 현금청산(집 대신 현금으로 보상받는 것) 대상자가 됐다. 지난해 말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의 1차 후보지로 그 동네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그의 빌라는 서울시의 후보지 발표 이주 전에 완공돼 보존등기가 나왔다.
문제는 신속통합기획 후보지의 권리산정 기준일이다. 서울시는 1차 후보지의 권리산정 기준일을 관련 모집 공고를 낸 지난해 9월 23일로 못 박았다. 이날 이전 취득한 등기분만 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 기준일 이후 완공돼 등기를 새롭게 취득한 빌라를 산 경우 ‘지분 쪼개기’로 간주해 현금청산 대상자가 된다. 조 씨는 3억3000만원에 빌라를 매입했지만, 현금청산을 받을 경우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계산해 이보다 낮은 금액을 받게 된다.
공공주도 재개발 권리산정일. 그래픽=김현서
서울 빌라(다세대·연립) 시장에 ‘현금청산’ 주의보가 내려졌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속속 발표하고 있는 공공주도 정비사업의 권리산정 기준일이 제각각인 탓이다.
사실상 서울 구도심 전역이 정비사업 후보지이기 때문에 빌라 매입자 중 현금청산 대상자가 되는 경우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현재 공공주도 재개발 사업은 크게 세 가지다. 공공이 땅을 수용해 개발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2·4공급 대책),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시행자가 참여하는 ‘공공재개발’, 서울시가 추진하는 민간 주도 재개발인 ‘신속통합기획’이다.
이 중 권리산정일 기준이 가장 까다로운 건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이다. 국토부는 권리산정 기준일을 대책 발표 다음 날인 지난해 2월 5일로 했다가, 현금청산 논란에 6월 29일로 늦췄다. 신축·구축 관계없이 이날 이후로 등기를 취득한 경우 모두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
도심복합사업 후보지 65곳 중 13곳이 권리산정일 이후 후보지로 지정됐다. 국토부는 올해에도 전국에서 5만 가구가량 추가부지를 확보한다는 목표다. 이에 따라 새로 선정될 후보지에서 지난해 6월 29일 이후 주택을 매매한 경우 모두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
공공재개발은 공모 공고일이 권리산정 기준일이다.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경우 1차 후보지는 공모 공고일을 권리산정 기준일로 했지만, 올해 공고 예정인 2차 후보지의 경우 기준일을 이달 28일로 못 박았다. 두 사업 모두 권리산정 기준일 이후 후보지 내 기존 주택을 거래할 경우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기준일 이후 완공된 신축 빌라는 ‘지분 쪼개기’로 간주해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 이에 따라 신축 빌라를 분양받고 완공되길 기다리고 있던 입주 예정자의 피해가 우려된다.
논란에도 빌라 거래는 늘고 있다. 10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는 빌라 거래(5만6451건)가 아파트(4만1913건)보다 많았다. 치솟은 아파트값으로 인한 불안감이 빌라 매매로 이어지고 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도심 내 어느 지역이 공공주도 정비사업 후보지로 지정될지 모르니, 사실상 신축 빌라 매매금지법을 발동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혼란을 막으려면 지구지정 이후 취득하는 주택에 한해 제한하는 등 일관성 있는 잣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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