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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현주] 경기도 용인시 동천동의 탑상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신선미(54)씨는 최근 기다려 온 인근의 새 아파트 청약을 포기했다. 탑상형에서 벗어나 판상형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새로 나오는 아파트도 탑상형이었다. 신씨는 “조망권이 좋아 탑상형에 들어왔는데 이전에 살던 'ㅡ'자 형태의 판상형보다 통풍 등이 안 좋아 불편하다”며 “다른 판상형 아파트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단조로운 외관이어서 '성냥갑'으로 불리며 주택시장에서 홀대받던 판상형 아파트가 돌아왔다. 판상형은 1990년대까지 아파트의 주된 형태였지만 2000년대 들어 다양한 배치가 가능하고 외관이 나은 'Y' 'ㅁ'자 등 모양의 탑상형에 밀렸다. 그러다 주택 수요자들 사이에 다시 인기를 끌면서 공급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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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이 지난달 서울 동작구 동작동에 분양한 이수힐스테이트는 판상형인 59㎡형(이하 전용면적) A타입은 1순위에서 1.4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됐다. 탑상형인 B·C타입은 2, 3순위에서 주인을 찾았다. 9월 GS건설이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공급한 마포자이2차도 비슷하다. 84㎡형은 판상형인 A타입은 1순위에서 1.5대 1이었는데 탑상형인 B타입은 3순위에서 겨우 마감됐다.
지난달 호반건설이 대전 도안신도시에 공급한 호반베르디움은 84㎡형 4개 타입 중에 판상형인 B타입은 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반면에 C타입은 1.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올 초 입주를 시작한 인천 논현지구 한화꿈에그린월드 에코메트로는 집 크기가 같더라도 아파트 형태에 따라 시세 차이가 1000만~2000만원 난다. 같은 84㎡형에서 판상형이 비싸다. 지난해 11월 입주한 인천시 논현동 힐스테이트도 1000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논현동 현대힐공인 이선영 사장은 “요즘 탑상형보다 판상형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서 시세가 역전됐다”고 말했다.
주택 수요자들이 겉모양보다는 실속을 챙기기 때문이다. 판상형은 앞뒤가 뚫려 맞통풍이 돼 환기나 통풍이 좋다. 대부분 남향이다. 탑상형은 2~3개 면이 개방돼 조망권은 좋지만 향이 좋은 주택이 적다. 건축비가 판상형보다 조금 더 들고 환기시설을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 외부와 접한 면이 많아 냉·난방비도 더 나온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사는 박치규(64)씨는 “판상형은 자연 통풍이 되고 남향이어서 여름철에 시원하고 겨울에도 덜 춥다”고 말했다.
공간 활용도도 판상형이 낫다. 집 구조가 사각형이어서 발코니 면적이 넓고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기 쉽다. 포스코건설 노형기 이사는 “발코니 확장이 허용되면서 판상형은 작은 주택형으로도 큰 주택형처럼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 작은 집으로 넓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요즘 분양되는 아파트에 판상형 비율이 크게 늘고 있다. 포스코건설이 이번 달 인천시 송도에 분양하는 더샵 그린워크의 판상형 비율은 65%다. 당초 계획 때는 판상형이 15%였다.
현대건설이 인천시 서구 당하동에서 지난해 1월 분양한 아파트의 경우 판상형이 49%였는데 같은 당하동에 최근 선보인 단지의 판상형은 63%다. 한화건설은 2007년 인천시 논현지구에 분양한 에코메트로의 전체 가구 가운데 50%를 판상형으로 지었는데 최근 김포시 풍무지구에 내놓은 유로메트로는 네 가구 중 세 가구꼴인 73%를 판상형으로 설계했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가 최근 3년간 가을 성수기인 10월에 분양된 수도권 아파트를 조사한 결과 판상형 비율이 2009년 15%에서 올해 46%로 크게 높아졌다.
주택산업연구원 김태섭 연구위원은 “수요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에 과거의 단순한 판상형이 아니라 탑상형 장점을 살려 더욱 세련된 판상형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