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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뻥 뚫린 분양권 전매제한…
`기는 정부` 위에 `나는 투기꾼`?
중앙일보 2019.03.29
지난 24일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의 한 K부동산중개사무소. 서울에서 왔다는 중년의 한 고객이 이 중개업소 관계자에게 "잘 아는 지인이 지난 2월 대장지구에서 전용 84㎡짜리 아파트에 당첨됐는데, 중도금ㆍ잔금을 낼 돈이 없다"며 "지금 분양권을 팔고 싶어하는데 가능하냐"고 물었다.그러자 중개업소 관계자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도시개발사업지구에 들어서는 이 아파트는 분양권 전매가 2022년까지 3년동안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중개업소 관계자는 "청약 당첨자가 약속어음을 발행해주면 전매제한 기간이라도 웃돈을 받고 분양권을 제3 자에게 넘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겠다며 잇따라 고강도 규제를 내놨지만 `기는 정부` 위에 `나는 투기꾼`이 있다. 정부 규제로 굳게 잠긴 부동산시장 곳간의 자물쇠를 따는 투기꾼들의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면서 정부 규제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전매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는 아파트 분양권을 매매할 때는 약속어음과 공증을 활용해 규제를 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기꾼들…"안되는게 어딨어?"
정부는 지난해 9ㆍ13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로 부동산 투기 차단을 위해 수도권 아파트의 전매제한 기간을 크게 강화했다. 이에 따라 주택면적에 관계없이 분양가격과 인근주택가격의 시세 차이의 정도에 따라 공공택지에서 건설ㆍ공급되는 주택은 최대 8년까지, 민간택지에서 건설ㆍ공급되는 주택은 공공택지의 50%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전매가 불가능해졌다.
신도시 등 공공택지의 경우 분양가가 인근 시세의 70% 미만이면 8년, 70∼85%면 6년, 85∼100%는 4년, 100% 이상이면 3년 등으로 전매가 제한된다. 하지만 `걷는 정부` 위에 `뛰는 투기꾼`이 있다. 투기꾼들은 다양한 편법이나 불법을 동원해 정부의 전매제한 제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투기꾼들이 분양권 전매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동원하는 대표적인 불법거래 유형이 바로 약속어음 발행 방식이다. 이는 불법 거래에 따른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유가증권 제도를 악용하는 수법이다.
주택시장에서는 현재 전매제한 규정에 따라 전매 제한이 풀리지 않은 아파트 분양권을 불법적으로 거래할 경우 분양권 매도자와 매수자 간 등기 이전이 불가능하다. 불법으로 거래한 분양권에 대해선 소유권 이전등기를 할수 없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매수자 입장에서는 분양권을 불법적으로 거래할 때 반드시 매도자가 매수자 본인이 아닌 제3자에게 분양권을 다시 넘기지 못하도록 자신의 권리를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투기꾼들은 이를 위해 먼저 분양권 매수자로 하여금 계약금과 웃돈에 해당하는 금액 만큼의 현금을 청약 당첨자(매도자)에게 지불하게 한다. 대신 매도자에게는 매수자에게 건넨 돈(계약금과 웃돈)의 2∼3배에 해당하는 액수의 약속어음을 매수자 앞으로 발행하게 한다.
매도자가 약속 대로 일정 기간에 매수자에게 분양권을 넘기지 않을 경우 약속을 지키지 않은 매도자에게 막대한 채무를 지우게 함으로써 거래 안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투기꾼들의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면서 정부 규제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지 중앙포토]
투기꾼들은 이와 동시에 매도자로부터 채권확보 서류인 부동산 담보 채권양도 위임장을 받도록 한다. 또 `매도자(청약 당첨자)가 전매제한 기간이 끝난 뒤 분양권의 명의를 매수자에게 이전해 주지 않을 경우 약속어음의 액면가를 변제한다`라는 내용의 특약 서류를 작성하게 하고 법률사무소에서 이를 공증받도록 한다.
분양권 불법 거래에 금전소비대차(양도담보부) 계약 공증이 동원되기도 한다. 금전소비대차 계약 공증은 분양권을 불법으로 거래한 뒤 매도자가 매수자한테 돈을 빌린 것처럼 위장하는 방식이다. 이때 매수자는 법률사무소로부터 금전소비대차(양도담보부) 계약을 공증받는 방식으로 권리를 확보한다.
이 경우 당첨자(최초 매도자)는 매수자가 다시 제3자에게 분양권을 넘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매수자란과 거래금액을 공란으로 두고 매도자 인감도장만 날인한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한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분양권 불법 거래 수단으로 약속어음이나 공증 대신 당첨자(매도자)가 소유한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도 있다. 전매제한 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분양권을 불법으로 사들인 뒤 이에 대한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받기 위한 수단으로 분양권 매도자 소유의 다른 부동산에 매수자가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적발되면 불법 수익의 3배까지 벌금
하지만 불법 분양권 거래는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3월부터 아파트 분양권을 불법 전매하거나 알선하다 적발되면 불법 수익의 3배까지 벌금을 물게 된다. 이전까지는 주택 불법 전매 등에 대한 벌금 상한은 3000만원에 불과해 불법으로 취득한 이득에 비해 벌금이 현저히 낮아 전매제한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구미텐인텐 신희창 대표는 "규제가 늘면서 불법ㆍ편법 투자 수법도 줄을 잇지만 당국에 적발될 경우 벌금 등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실수요자들은 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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