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전세시장 “이사계획 어떻게 세우나”
동아일보 2020.01.20
20일부터 시가 9억 넘는 주택-다주택자 전세대출 전면규제
경기 고양시 일산에 9억 원이 넘는 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학생 자녀를 위해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전세살이를 하는 A 씨. 그는 올해 말로 닥친 전세 만기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집주인이 분명히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할 것 같은데 20일부터 새로운 전세대출 규제가 시행돼 은행에선 추가 대출을 받기 어려워졌기 때문. 그는 추가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자금을 수소문 중이다. A 씨는 “자녀가 학업을 마치면 일산으로 들어갈 텐데 예고도 없이 이런 규제가 시행된다니 당황스럽다”고 전했다.
20일부터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강화하고, 대출자에 대한 사후관리도 엄격하게 하는 강력한 규제가 시행된다. 이에 따라 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시장이 일대 혼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 고가 주택 보유자, 전세금 올라도 추가 대출 못 받아
새로운 규제의 핵심은 9억 원 초과 주택 보유자들의 신규 전세대출을 막고, 전세대출을 받은 뒤 고가 주택을 사면 대출을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전세대출을 이용한 ‘갭 투자’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이번 규제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해 전세 시장의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미 다른 지역에 고가 주택을 보유한 상태에서 자녀 교육 등의 목적으로 서울 강남 등지에 전세를 사는 경우다.
이 경우 만약 집주인이 나중에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해도 세입자는 규제에 따라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결국 전세금 증액에 필요한 돈을 스스로 마련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반전세나 월세로 돌려야 한다. 경우에 따라 보유 주택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최근의 가파른 전세금 상승세를 고려하면 2년 전 전세가가 그대로 유지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이번 규제로 인해 반전세나 월세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집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고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전셋집 마련을 위해서는 신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번 규제로 인해 설령 같은 단지 내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한다 해도 대출을 받는 게 불가능하다. 다만 당국도 이런 상황을 우려해 전셋집 이사로 증액 없이 대출을 재이용할 경우 4월 20일까지에 한해 SGI서울보증에서 한 차례 전세보증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9억 원 이하 주택을 보유한 전세대출자도 안심할 수 없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에 거주하는 B 씨는 요즘 자기 집값이 오를까봐 조마조마하다. 곧 양천구 목동에 전셋집을 구해 이사 갈 계획인데 신도림에 보유한 아파트는 전세를 내주더라도 목동에 들어가려면 추가 대출이 필요하다. 문제는 전세대출을 신청할 때 지금 8억 원이던 신도림 아파트 가격이 나중에 9억 원보다 올라갈 경우다. 9억 원 초과 고가 주택 보유자는 아예 대출을 받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B 씨는 “집값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이사 계획을 세울 수 없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 회수되는 전세대출 갚지 못하면 금융거래 불이익
전세를 끼고 고가 주택을 매입하는 전략도 이제는 포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대출을 받은 뒤 9억 원 초과 주택을 사거나 다주택자가 되면 대출을 회수하는 강력한 규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규제를 위반해 대출금 회수 조치를 당했다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자칫 금융거래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은행들은 늦어도 3개월에 한 번씩 국토교통부의 보유 주택 수 확인 시스템을 통해 대출자의 규제 준수 여부를 확인한다. 이때 규제를 어긴 것으로 적발되면 차주들은 약 2주 안에 대출금을 도로 갚아야 하고, 상환하지 못할 경우 연체 정보가 등록된다. 이러면 연체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용등급이 급격히 떨어지고 대출과 카드 발급이 사실상 막힌다. 만일 연체 정보가 등록된 상태에서 이후 석 달간 대출을 갚지 못하면 실제로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된다. 또 규제 위반으로 대출 회수를 당한 차주는 이후 3년간 주택 관련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장윤정·김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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