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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어디서 났니“…전·월세 신고제가 무서운 이유
중앙일보 | 2020.06.13
2007년 첫 발의 이후 13년간 도입 실패
전셋값 불안, 세금 전가 등 논란
자금조달계획서 들어가면 '태풍의 눈'
전월세 신고제, 계약갱신 청구권·전월세 상한제 '초석'
정부는 올해 전월세 신고제를 도입하기로 했고 국회에선 거대 여당이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4·15 총선으로 탄생한 거대 여당의 21대 국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예상되는 ‘주택 임대차 보호 3법’. 전·월세 거래 신고제(부동산거래신고법), 세입자가 원하는 기간 거주할 수 있는 계약갱신 청구권(이하 주택임대차보호법),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 집주인과 세입자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주택시장 전반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쟁점이다.
주택 임대차 보호 3법 첫 관문
정부는 2017년 12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을 2020년 이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대주택 등록 혜택을 당근으로 먼저 준 뒤 채찍을 든 것이다.
정부는 올해 주거종합계획에 임차인 보호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임대차 신고제’를 포함했다. ‘주택임대차 신고제 실행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도 발주했다.
국토부는 “거래 신고제가 도입된 매매시장과 달리 임대차시장은 확정일자 신고 등 제한된 정보만 공개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불투명하다”며 “임대료 정보 부족 및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해 임대조건 협상 시 임차인의 입지가 좁고 분쟁 발생 시 해결 기준이 없다”고 용역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향후 계약갱신 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등의 추진을 위한 정확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현재 매달 발표하고 있는 전·월세 거래 현황은 모든 전·월세 거래를 집계한 것이 아니다. 세입자가 자발적으로 확정일자를 신고한 물량이다. 한국감정원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임대 추계 692만 가구 중 확정일자를 받은 가구가 전체의 25% 정인 187만 가구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이 임대차 계약 신고를 의무화한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을 지난해 8월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 폐기됐으나 안 의원이 이번 21대에 다시 발의할 예정이다.
계약갱신 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도 21대 들어서자마자 더불어민주당 윤후덕·박주민·백혜련 의원이 각각 발의해놓은 상태다.
정부가 본격 추진에 나서고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밀어붙이면서 전·월세 신고제의 시행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논란과 우려가 커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할지는 장담하기 이르다.
전월세 신고제 13년간 헛바퀴
사실 전·월세 신고제는 임대차 정보 투명화라는 어렵지 않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제도화를 두고 국회가 4번 바뀌는 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진통을 겪어왔다.
13년 전 17대 국회에서 2007년 5월 민병두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전·월세계약증서를 신고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월세 내용을 신고하도록 함으로써 주택임대차시장의 실제 현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이를 근거로 장기임대주택의 지역별·규모별 배분, 서민 주거비 보조금 지급의 합리적 확대 등의 정책을 과학적으로 집행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2006년부터 부동산 매매거래 신고제가, 임대주택과 관련해선 공공건설임대주택의 임대조건 신고제가 시행되고 있었다.
민병두 의원 안은 임대주택 공급물량 감소와 집주인의 임대소득 세금 전가 등에 따른 전세시장 불안 우려에 부닥쳐 국회를 넘지 못했다. 집주인이 임대료 노출과 임대소득 과세를 우려해 임대 주택을 거둬들이거나 임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 집값 못지않게 전셋값도 뛰던 때였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2006년 11.7% 치솟았고 2007년엔 2.9% 올랐다.
민 의원은 전셋값 불안에서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전·월세 신고제 도입을 주장했지만 되레 전세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목소리에 묻혔다.
18대 국회에서 당시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이 민병두 의원의 바통을 이어받았으나 국회 통과를 하지 못했다. 전셋값이 고공행진하던 때였다. 20대와 21대에서 안호영 의원이 매듭을 지을지 주목된다.
전·월세 신고제 첫 논의부터 제기돼온 우려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해 다소 잠잠하던 전셋값이 올해 들어 꿈틀대고 있다. 지난해 0.7% 하락했던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올해 들어 5월까지 누적해 1.3% 상승했다. 1~5월 상승률이 같은 기간 기준으로 2015년(4.15%) 이후 가장 높다. 제대로 잡히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분양이 다가오는 3기 신도시 등의 영향으로 전셋값이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월세 신고제가 과세 형평성을 제고하지만 집주인 입장에선 보유세 부담이 커진다. 세원이 노출되지 않던 임대주택 75%의 집주인은 전·월세 신고제로 임대소득이 드러난다. 현재 전세는 3주택부터, 월세는 2주택부터 임대소득 과세 대상이다.
전월세 신고에도 자금조달계획서?
그런데 전·월세 신고제엔 세금보다 더 무서운 게 숨어있다. 전·월세 신고에도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할 경우다. 정부는 전·월세 신고제에 자금조달계획서 제출까지 아직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도입 가능성이 있다. 유동성이 넘쳐나는 가운데 정부가 주택시장으로 들어오는 자금을 예의주시하기 때문에 전·월세 신고제가 시행되면 수상한 전세자금을 들여다보고 싶어할 수 있다. 신고제가 시행되면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도입은 쉽다. 주택구입 자금조달계획서도 실거래가 신고를 도입한 데 이어 추가됐다.
현재 주택 매매거래 신고에선 서울 등 조정대상지역에서 3억원 이상 거래에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
그동안 전세자금 흐름이 사각지대였다. 일부 전세자금이 주택구입자금 마련의 지렛대로 활용되기도 했다. 부모 등으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전세자금이 집을 사는 데 디딤돌이 되는 게 현실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이 8억3000만원이다. 아파트 매수자 중 30대가 30% 정도다. 5억원짜리를 사더라도 30대로선 벅찬 금액이다. 4억3000만원인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도 힘들다.
주택구입 자금조달계획서의 전세보증금에 대해선 출처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으론 부모가 자녀에게 세금 없이 줄 수 있는 돈이 5000만원까지이지만 실제론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증여세 신고를 하지 않고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7년 서울시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30대에서 부모 등으로부터 무상으로 임차보증금을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5%였다.
부모에게 지원받은 전세자금이 나중에 집을 살 때 종잣돈이 되는 셈이다.
특히 고가 전세자금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서울에서 전세보증금 10억원 이상으로 확정일자 신고가 된 건수가 871건으로 전체(2만2646건)의 3.8%다.
감추고 싶은 전세자금
지난해 30대가 30억원을 주고 강남 아파트를 구입했다. 구입자금 30억원 중 19억원이 전세보증금이었다. 19억원의 출처를 알 수 없지만 일부 ‘부모 찬스’가 아니겠냐는 시각이 많다.
전·월세 신고제가 주택구입 자금조달계획서의 구멍을 막을 수 있는 셈이다. 고가주택 매입을 위해 편법 증여를 통해 자금을 전세금으로 ‘우회 세탁’하지 못하게 된다. 전·월세 신고제 반대에는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전세자금도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세자금이 노출돼 편법 증여 등에 제동이 걸려 전세시장으로 들어오는 자금줄이 막히면 전세 구매력 약화로 전세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낮추는 대신 일부를 월세로 돌리게 돼 월세가 늘어날 수 있다.
매매자금줄이 막혀 주택 구매력도 떨어진다. 전세보증금이 줄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도 어려워진다.
전·월세 신고제는 주택시장을 뒤흔드는 예상 밖의 큰 태풍이 될 수 있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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