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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규제 10년, 주민 삶이 쪼개졌다

서광 공인중개사 2021. 5. 21. 17:09

 

재개발 규제 10년, 주민 삶이 쪼개졌다

 

 

 

 

 

조선일보 | 2021.05.20

 

[강북 르네상스 열자] [上] 규제가 만든 주거 양극화


2006년 처음 추진된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은 185만㎡에 달하는 강북 최대 재개발 사업으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도 전체 15개 개발구역의 절반가량이 낡은 저층 주거지로 남아있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에서 재개발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종로구 사직2구역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지하철 광화문역이 있을 정도로 입지가 좋지만, 재개발이 장기간 표류한 탓에 주택 노후화가 심각하고 전체 주택의 23%(2019년 기준)가 비어 있다.

길 하나 두고 정반대 풍경 - 서울 상공에서 바라본 성북구 장위뉴타운의 모습.

 

재개발이 완료된 왼쪽 지역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반면 애초 재개발을 추진하다가 취소된 오른쪽 지역은 여전히 낡은 저층 주거지로 남아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거주 만족도가 높지만, 재개발이 무산된 지역 주민들은 주택 및 생활 인프라 노후화에 따른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2011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취임 후 10년간 주로 강북 지역에 몰려 있던 뉴타운 사업이 대거 취소되고,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가 강화됐다. 그 결과 강북 지역의 주거 인프라 수준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양극화가 심화했다. 마포구 아현동, 성동구 왕십리, 성북구 길음동 등 재개발이 성사된 곳은 인기 주거지로 부상하면서 집값도 급등했다. 그러나 재개발이 장기간 지연되거나 취소된 지역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 인프라, 기반시설 노후화에 따른 불편과 안전사고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장위뉴타운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층 새 아파트촌과 노후 저층 주거지로 갈라져 있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가 취소되면 해당 지역은 슬럼가처럼 변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서울 내 재개발·재건축 해제 지역 394곳 중 386곳의 실태를 파악한 결과, 절반인 193곳이 후속 대안 사업 없이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개발 취소로 신축 아파트 공급이 무산된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의회의 ‘서울 정비사업 출구전략의 한계 및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에서 재개발·재건축이 추진되다가 취소된 지역에 공급할 수 있는 아파트는 24만8000여 가구에 달한다. 올해 1월 기준 서울 아파트 총량(약 127만7000가구)의 약 20%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뉴타운 등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됐다면 강북 곳곳에 강남을 대체할 수 있는 양질의 주거지가 들어서고, 강남에서 시작된 서울 집값 불안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대규모 재개발이 가능한 곳은 민간 주도로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길 하나 두고 집값 8억差, 재개발 취소 주민들 “박탈감에 잠이 안와”

지난 18일 찾은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은 1980년대와 오늘날이 뒤섞인 듯한 모습이었다. 뉴타운 사업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돌곶이로를 경계로 동쪽엔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서쪽은 낡은 단독주택과 저층 빌라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애초 전체 지역을 아파트촌으로 재개발하려 했지만, 일부 구역에서 사업이 무산되면서 빚어진 풍경이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재개발이 안 된 지역은 장마철엔 비가 새고 골목길로 자동차도 못 다닐 지경”이라며 “신축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길 건너 빌라촌 주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곳곳에 빈집과 폐가… 서울 한복판이 이렇습니다 - 빈집과 폐가가 즐비해 서울 한복판이라고 믿기 어려운 종로구 사직2구역 모습. 재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었지만 2017년 서울시가“역사·문화적으로 보존이 필요하다”며 직권으로 정비구역 지정을 해제했다. /오종찬 기자

 

서울 뉴타운 중 최대 규모였던 장위뉴타운(185만㎡)은 15개 구역 중 6곳에서 사업이 취소되면서 전체 아파트 공급 규모가 3만 가구 수준에서 1만5000가구로 쪼그라들었다. 재개발 여부에 따라 주민들의 주거 수준은 극명하게 갈라졌다. 장위7구역 신축 아파트 ‘꿈의숲 아이파크’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연말 13억원에 거래됐지만, 재개발이 취소된 13구역 내 ‘그린빌’ 아파트(전용 84㎡)는 최근 실거래 최고가가 5억4700만원에 불과하다.

◇'반쪽' 전락한 강북 뉴타운

종로구 옥인1구역은 2017년 재개발이 취소된 후 전체 주택의 절반이 빈집으로 방치되며 급속도로 슬럼화가 진행 중이다. 성북구 성북4구역, 용산구 한남1구역 등도 재개발이 취소되며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낡은 주거 지역을 대규모로 개발하면 도로·상수도·전력·통신 같은 기반 시설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어 주거 환경 개선 효과가 크다. 과거 소규모로 이뤄지던 재개발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도입한 뉴타운 정책이다.

하지만 박원순 전 시장은 2012년 ‘정비 사업 출구 전략’을 들고 나와 정비 구역 683곳 중 394곳의 사업을 취소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장기간 사업이 지연돼 주민 불편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재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박 시장 취임 초기인 2012년과 2013년엔 보금자리주택이나 2기 신도시 등 공급이 충분했고, 서울 아파트값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집값 하락기에는 재개발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져 속도를 내기 어렵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재개발 중단에 따른 공급 부족 여파로 2014년부터 서울 집값이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서울시는 정비 사업 억제 기조를 유지했다”며 “공공 재개발 같은 정책을 그때 냈더라면 집값 안정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재개발 구역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종로구 사직2구역은 2012년 사업 시행을 인가받고 정상적으로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2017년 서울시가 “역사·문화적으로 보존이 필요하다”며 직권으로 정비 구역을 해제했다. 이에 반발한 조합이 무효 소송을 제기해 승소는 했지만 4년 가까운 세월을 허비했다. 이렇게 주민 동의 없이 해제된 정비 구역이 114곳에 달한다.

◇'공공 주도' 고집 버려야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과 강남·북 격차 해소를 위해 지금이라도 민간 재개발을 다시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2015년 이후 재개발 신규 지정 없이 지나치게 규제 위주 억제책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라며 “그 부분에 대해 완화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지금껏 ‘공공 주도’ 주택 공급을 강조하던 정부 정책 기류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8일 주택 공급 기관 간담회에서 “충분한 사업성이 있고 토지주의 사업 의지가 높은 곳은 민간이 중심이 돼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부가 ‘공공 주도’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서울시와 함께 민간 재개발을 활성화하는 것이 지금의 주택난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이라며 “서울 도심에 대규모로 주택이 공급된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무주택자들의 불안 심리가 누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