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그린벨트 12년만에 풀어 1만채 공급”
출처: 동아일보 2024.08.09
정부 ‘8·8 주택공급 확대 대책’ 발표
재건축-재개발 촉진 특례법도 추진
[8·8 주택공급 대책]
정부 “수도권 42만여채 공급”
집값 뛰자 尹정부 4번째 대책 발표… 재건축 절차 6→4단계로 간소화
전문가 “공사비 급등 대책은 없어… 서울 공급부족 해결 역부족” 지적
정부가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한 특례법 제정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수도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서울에 최소 1만 채 등 8만 채 규모의 신규 택지 지정에 나선다.
정부는 8일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재건축 재개발 촉진법’(가칭)을 제정해 안전진단부터 준공까지 사업단계를 간소화해 통상 15년 걸리던 사업기간을 9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정비사업 최대 용적률도 3년 한시로 30%포인트까지 더 높일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나온 4번째 공급대책이다. 각종 규제 완화 등에도 도심주택 공급에 속도가 나지 않자 ‘특례법’ 카드까지 꺼내든 것이다.
정부는 또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올해 11월 5만 채, 내년 3만 채 규모의 신규 택지 후보지를 각각 지정한다. 대규모 주택을 지을 용도로 서울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이후 12년 만이다.
촉진법 등이 여소야대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아직 당론이 정해진 건 없지만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다만 차기 당 대표로 유력한 이재명 후보가 중산층을 겨냥한 정책을 쏟아낼 수 있어 전향적인 검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특례법 만들어 재건축 기간 15년 → 9년 단축… 野 동의가 관건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위해 특례법 제정까지 추진하고 나선 것은 서울 도심에 신축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8월, 작년 9월, 올해 1월 총 3번의 공급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가시적인 효과는 미미했다. 공사비 급등 여파로 착공과 인허가 등 주택 공급 물량이 크게 줄어드는 사이 서울 주요 지역의 집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이번 ‘8·8대책’은 정비사업 절차 간소화, 용적률 상향, 취득세 감면 등 각종 인센티브가 망라된 ‘종합선물세트’ 수준이다. 이를 통해 수도권에만 42만7000채를 조기 또는 추가 공급한다는 게 정부 목표다. 전문가들은 일부 대책에 기대를 나타내면서도 공사비 급등으로 사업성이 바닥에 떨어진 현 상황을 해결하기엔 역부족라는 데 입을 모은다. 게다가 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법 개정 사항이 많아 대책 효과가 나타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사업절차 단축하고 용적률 상향
8일 정부가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재건축·재개발 촉진법’은 재건축·재개발 사업 시 거쳐야 하는 법적 절차를 간소화하는 게 핵심이다. 현재 정비사업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라 안전진단 통과부터 관리처분인가까지 착공 전 6단계를 거쳐야 한다. 촉진법에선 기본계획과 정비계획, 사업시행과 관리처분계획을 동시에 진행해 4단계로 줄인다는 구상이다.
3년 한시적으로 정비사업 최대 용적률을 법적 상한의 최대 1.3배까지 허용하는 내용도 담겼다. 건축물 높이 제한과 공원 녹지 의무 확보 기준도 완화한다.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해 공급 물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현재 정비사업을 할 때 전체 주택의 60% 이상은 ‘국민평형’인 전용면적 85㎡ 이하로 채워야 하는데, 이런 의무도 폐지한다.
조합원 간 의견 대립으로 정비사업이 지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건축 조합 설립 요건도 완화한다. 조합원 동의율 요건을 75% 이상에서 70% 이상으로, 동별 동의율은 2분의 1 이상에서 3분의 1 이상으로 낮추기로 한 것이다.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해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촉진법에 담길 예정이다. 1000채 이상 사업장에서 공사비 갈등이 발생하면 관할 지자체가 외부 전문가를 파견해 갈등을 중재하는 식이다.
공사비가 급등한 상황에서 조합원의 분담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방안도 마련됐다. 재건축으로 지어진 신축아파트 취득세를 1주택자 조합원에 한해 최대 40% 깎아주는 게 대표적이다. 다만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지역의 분양가 12억 원 이하인 경우에만 적용된다.
● “재건축 기간 6년 단축” vs “실효성 의문”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옥죄었던 규제를 풀어 공급을 확대하겠다며 총 3번의 공급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공사비 급등, 최저임금 상승 등의 직격탄을 맞아 효과를 보지 못했다. 2022년 ‘8·16대책’에선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및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을 완화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9·26대책’에선 3기 신도시 공급 속도를 높이고, 올해 ‘1·10대책’에선 준공 30년이 넘는 아파트의 안전진단 규제 완화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올해부터 2029년까지 서울 도심에서 13만 채가 정비사업을 통해 공급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서울에서 구역 지정을 마친 정비사업 규모(37만 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진현환 국토교통부 1차관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정비사업에서 ‘시간은 돈’이다. 준공 30년이 넘은 단지는 안전진단 없이도 사업에 착수하면 최대 3년을 줄일 수 있고, 이번 대책으로 추가로 3년이 줄어 통상 15년인 사업 기간을 6년 단축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비사업은 금융기관에서 사업비를 빌려와 진행하기 때문에 사업 기간이 단축되면 사업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공급 부족은 정부 규제보다는 공사비 급등 등 사업성 악화에 따른 것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주임교수는 “사업이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는데 이번 대책으로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당장 정비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비사업 규제 완화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것도 관건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재건축·재개발 촉진법 제정과 도정법 개정 등 관련 법안의 입안 속도에 따라 정책 현실화에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준공 30년이 넘는 단지의 안전진단 규제 완화를 위한 도정법 개정안(1·10대책)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됐지만 아직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와 관련해서도 정부와 여당은 폐지 의지가 확고하지만 야당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재초환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사업성이 비교적 좋은 강남, 여의도 등 최고 입지 재건축에만 혜택을 준다는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호경 기자, 윤다빈 기자, 이축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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