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아파트에 거주 중인 세입자 이모(男·39)씨는 집주인이 전세금으로 1억원을 올려달라고 해서 고민에 빠져 있다. 집값은 하락하고 있지만 전세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이참에 집을 사야 할지, 아니면 전세금을 올려주고 계속 전세로 거주하는 것이 좋을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2. 분당신도시에 사는 5년차 주부 박모씨는 집값이 많이 내렸다고 해도 아직 선뜻 매입할 엄두가 안날 정도로 아직도 많이 비싸고, 또 주변에서 집값이 좀 더 떨어질 것이란 얘기도 있어 막연한 기대감에 주택 구입을 미루고 있다.
◆ 매입 초기에 목돈이 많이 들다보니…
최근 수도권 아파트 전세금은 3.3㎡당 평균 600만원을 돌파했다. 서울도 800만원을 훌쩍 넘겨 4년새 30%가 넘게 올랐다. 전세금이 쉼없이 오르면서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을 뜻하는 전세가율은 62%대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상 전세가율이 60%를 넘어서면 비싼 전세금에 압박을 느낀 세입자가 매매수요로 전환되는 흐름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전히 전셋집으로 몰리고 있다.
내년초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회사원 김모(男·33)씨도 신접살림을 차릴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 집을 사서 내야하는 세금이라던가 대출이자 부담을 지지 않고도 아파트에서 생활할 수 있어서 전세가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고 나중에 집을 살때쯤 모아서 사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부채가 없어 당장 내집마련을 할 수 있는 무주택 전세가구를 32~43만 가구로 추산하고 있다. 결국 이들 잠재수요의 움직임에 따라 전세시장 안정뿐 아니라 주택 거래활성화 시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전·월세 살이가 정답은 아냐”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집값하락이 장기화 혹은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예단한 후 무작정 집 구입을 미루고 임차인으로만 살겠다고 하는 수요층이라면 임차인으로 살아가는 애로점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숙고해 봐야 합니다.” (부동산 전문가 A씨)
그렇다면 전월세 살이가 정답인 것일까. 내집마련의 좋은점은 없는 것일까. 부동산富테크연구소 김부성 소장의 조언을 토대로, 내집마련을 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네가지 문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선 내집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집주인이 따로 있어서 거주기간동안 반드시 만기라는 것이 정해져 있고 이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사할 때마다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는 점이다.
지난 23일 한국소비자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포장 이사비는 평균 98만원으로 4년전인 2007년(78만5000원)보다 24%나 급등했다. 만약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를 지나 내년, 그리고 새정부 5년동안의 기간인 2018년까지 이사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한 지난 23일자 모 경제지에 보도된 신문기사에서 실제 서울에서 이사를 가는 이모씨 3인가족의 이사견적서(5곳중 가장 저렴한 업체 기준)를 직접 추출해본 보도자료의 사례를 보면, 최소한으로 줄였음에도 이사비용이 300만원 넘게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새로 이사갈 경우 전세로 가게되면 도배나 장판이나 전등, 기타 소모품 등의 교체를 하게 되는데 이런 비용은 제외하고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만 감안한 것이다. 집을 내놓으면서 부동산에 들르는 시간이나 계약시, 잔금시 이런저런 신경을 써야 하는 시간과 노력의 기회비용 등을 감안하면 보통 이사비용이 400만~500만원정도 나온다고 하는 것도 틀린말이 아닌 것이다. 20년을 기준으로 2년에 한번씩 옮긴다면 10번을 옮겨야 하는데 이사비용만 20년동안 4000만~5000만원정도가 들어가니 적은 금액은 아니다.
두번째로,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 학교문제와 자녀의 정서 등에도 애로점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사시기와 학교 개학일 등이 안 맞는 경우도 있고, 자녀들이 또래친구들과 친해질만하면 이사를 가는 경우가 많아 자녀들 정서에도 좋은 영향은 주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몇 년전 중견탤런트로 맹활약을 하고 있고 이름을 날리고 있는 탤런트 최모씨가 TV프로에 나와 20여년만에 처음으로 내집마련을 해서 가장 좋은점이 자녀들이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얘기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되고 누구 눈치 볼 일도 없어서 너무 좋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의 사례일뿐이긴 하지만 이사때마다 받는 임차인들의 스트레스도 상당한 편이다.
세번째로, 이사때마다 ‘전세가격이 내려가면 좋을텐데…’ 보통 그 반대가 많고 외환위기같은 거대한 충격파가 오지 않는 이상, 그리고 지금처럼 집값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과거보다 덜 갖고 있는 실수요자들이 많은 경우에는 전세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거나 어떤 경우 수급이 불일치되는 경우에는 전월세가격이 폭등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사때마다 올려줘야 하는 전세금마련도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신건강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내집이 아닌 타인의 집에 거주하는 경우 집값이 상승하지 않거나 하락할때만 집에 대한 부분에서는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
만약 그 반대(상승)라면 이러한 평정심은 곧잘 불안감과 상실감·조바심 등으로 인해 쉽사리 깨뜨려지기 쉽다.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집값이 불안해지거나 상승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내집마련 잠재수요 32~43만 가구로 추정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소 김덕례 연구위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전월세가구 자산구조를 고려한 (전세→자가) 전환 가능 잠재수요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94만 무주택 전세가구 중 부채가 없는 32∼43만 가구는 전세가격 지속상승에 따라 주택을 구입할 의사가 있는 잠재수요 가구다. 김 연구위원은 이들이 매매수요로 전환해 주택을 구입하면 △전세가격 안정화 △봄철 전세난에 대한 선제적 대응 △거주안정효과 △매매거래·지방세수 증가효과가 기대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60%를 웃돌면서 자가가구 전환 기조가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전세가구 중 부채가 없는 32∼43만의 가구가 주택을 매입하게 되면 동일 가구 수의 전세주택이 시장에 재공급돼 가격안정화가 가능하다”며 “한해 전세거래량(11년 약 93만건 전세거래)의 34~46%가 감소하는 효과발생으로 전세가격 상승압력이 둔화되면서 내년초 전세난에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고, 일년 전세거래량(2011년 약 93만건)의 34∼46%가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 보증부월세→전세→자가로 이동…’주거이동 사다리시스템’ 구축해야
이에 김부성 소장은 “주택을 구입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주택을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경우라면 위와같은 임차인으로 거주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기타 애로점들도 한번쯤은 고려해본 뒤 바닥까지 기다려 사겠다거나 혹은 평생을 내집마련은 절대 생각도 안하겠다고 하는 확정적인 생각보다는 지금처럼 가격이 많이 내리고 전세가격은 오르는 추세에서 전세금과 초저금리를 활용해 실수요측면에서 내집마련을 하는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덧붙여 김 소장은 “내집 한채 있으면 나중에 주택연금 등으로 활용하여 평생 남의 눈치 안보고 내집에 살면서 사망때까지 연금을 받으면서 노후보장을 할 수도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에 투기목적이 아닌 실수요개념으로 내집 한채 마련하는 것도 남의 집에 살면서 겪게 되는 위와같은 여러 가지 애로점을 피할 수 있으면서도 노후보장도 같이 되는 일석이조가 될 수 있으므로 내집장만을 고려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김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