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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현금청산’, 정비사업 갉아 먹는다
코리아리포스트 2014.01.28
[코리아리포스트=정훈 기자] 가뜩이나 정비사업의 시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더욱 곤란케 만드는 ‘불청객’이 늘고 있다.
‘현금청산’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라 분양시장이 맥을 못 추면서 자신이 보유한 재개발ㆍ재건축 등의 지분을 포기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
현금청산이 늘면서 사업시행자인 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의 부담도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업계 한편에선 현금청산자를 이른바 ‘먹튀’로 인식해 이들에 대한 ‘벌칙’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분양시장 부진 탓에 분양신청 포기 급증
청산금 마련부터 ‘난관’… PF 대출 ‘하늘의 별 따기’
현금청산이란 말은 관계 법령 등에 규정된 용어가 아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조합원 중 분양신청을 포기하거나 철회한 자 혹은 분양대상에서 제외된 자 등에 대해 사업시행자가 현금으로 청산(淸算ㆍ서로 간에 채무ㆍ채권 관계를 셈해 깨끗이 해결)해 준다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작년(2013년) 12월 24일 개정ㆍ시행되기 전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제47조제1항은 ‘사업시행자는 토지등소유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날부터 150일 이내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토지ㆍ건축물 또는 그 밖의 권리에 대하여 현금으로 청산하여야 한다’면서 ▲제1호에 ‘분양신청을 하지 아니한 자(포기자) 또는 분양신청기간 종료 이전에 분양신청을 철회한 자(철회자)는 제46조제1항에 따른 분양신청기간 종료일의 다음 날’을 ▲제2호에 ‘제48조에 따라 인가된 관리처분계획에 따라 분양대상에서 제외된 자(제외자)는 그 관리처분계획의 인가를 받은 날의 다음 날’을 각각 명시하고 있다.
현금청산은 언제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수년 간 부동산 경기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현금청산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서울 강북의 A재건축조합은 최근 실시한 조합원 분양신청 결과, 전체 조합원의 50% 가까이가 이를 포기해 충격에 빠졌다. 지난해 하반기 조합원 분양신청을 진행한 서울 노원구 B재건축조합도 현금청산 대상자가 100명 가까이 돼 사업성 제고를 위한 설계 변경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대문구 C재개발조합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곳은 현금청산에 필요한 비용이 200억원 이상으로 집계돼 역시 분양성을 확보키 위한 설계 변경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이처럼 과거에 비해 급격히 증가하는 현금청산은 여러모로 사업시행자에게 부담이 된다. 당장 현금청산자에게 지급해야 할 자금 마련부터가 난제다. 청산 금액이 한두 푼이 아닌 데다 자금 조달 경로도 제한돼 있어서다.
법정기간을 어겨 청산금 지급이 늦어지면 그에 따른 지연이자도 물어야 한다. 2012년 2월 1일 신설된 도정법 제47조제2항은 ‘사업시행자는 제1항에 따른 기간 내에 현금으로 청산하지 아니한 경우 정관 등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토지등소유자에게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사업시행자는 자금을 마련키 위해 은행 등으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ㆍ은행 등 금융기관이 사회간접자본 등 특정사업의 사업성과 장래의 현금흐름을 보고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기법)을 통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PF 대출을 받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현금청산이 많은 사업장에 선뜻 돈을 빌려주는 곳이 드문 데다 시중은행들이 일선 조합의 신용도를 낮게 평가해 대출 자체를 꺼리거나 까다로운 대출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시공자의 보증이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 리스크가 현저히 높아진 상황에서 건설사가 자신이 시공하는 사업에서 현금청산자에게 청산금을 지급키 위해 보증을 설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난 하반기 국내 상장 건설사들이 회사채ㆍ기업어음 등의 상환에 사용한 비용이 4조원을 넘었다”면서 “올 상반기에는 그 규모가 이보다 큰 4조5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만큼 ‘제 코가 석 자’인 시공자가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위해 보증을 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분양신청 포기 물량 일반분양분으로 ‘적체’
미분양 위험은 ↑ 사업성은 ↓… 사업 좌초로 연결
현금청산에 필요한 자금 마련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후에 발생한다. 조합원이 분양신청을 포기한 물량은 고스란히 일반분양분으로 남게 된다. 이는 분양시장이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 미분양 리스크가 커진다는 의미다.
현금청산이 증가한다는 것은 해당 사업의 미래 가치를 낮게 본다는 의미로, 그 자체가 사업 위협 요소다. 특히 이미 분양신청을 한 조합원들이 이를 철회토록 하거나 훗날 일반분양을 염두에 두고 있던 수요자들이 청약을 포기토록 하는 요인이 된다. ‘현금청산 증가-분양신청 한 조합원의 불안감 증대-현금청산 증가’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렇게 형성된 악순환은 사업을 좌초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문제에 심각성을 더한다.
정비사업 전문가 A씨는 “현금청산이 발생하는 시기가 조합이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분양신청에 나선 이후라는 점에 비춰 볼 때 현금청산의 증가로 특정 사업이 좌초될 경우 그 피해는 조합원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조합(원) 입장에서는 현금청산에 따른 비용과 일반분양분 증가로 인한 분양 책임 가중, 미분양 시 추가부담금 급증 등의 부담을 져야 하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로서는 지역 부동산 침체에 따른 관련 세수 감소와 신규 주택 공급 감소로 인한 부작용 등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업계 한편에서는 현금청산에 따른 부담을 조합이 전적으로 진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중요 사업 파트너이면서도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부턴 발뺌하려는 시공자를 규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조합 관계자는 “사업 포기 시 이른바 ‘매몰비용’이 걱정인 조합과 달리 시공자는 현금청산에 따른 추가 비용을 조합(원)에 전가시키기 위해 계약 변경을 요구하거나 이를 관철키 위해 착공을 미루는 식으로 조합을 압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일은 주로 ‘지분제’ 방식의 재건축 사업장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재건축에서조차 ‘도급제’가 대세가 돼 버린 상황에서 시공자는 공사를 해 주고 그 대금만 받으면 그만이므로 현금청산 증가로 커진 미분양 위험은 조합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덧붙였다.
조합 부담 덜어줄 개정 도정법 수혜 대상 ‘제한적’
2013년 12월 24일 이후 조합설립인가 신청 사업만 해당
조합의 부담을 덜기 위해 도정법이 개정됐지만 그 수혜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작년 12월 24일 공포ㆍ시행에 들어간 개정 도정법 제47조제1항은 사업시행자가 관리처분인가일 다음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분양신청 포기자와 철회자 또는 분양대상 제외자의 토지ㆍ건축물 또는 그 밖의 권리에 대해 현금청산 토록 했다.
하지만 이 조항은 부칙 제4조에 따라 법 시행일 이후 최초로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는 분부터 적용된다. 따라서 2013년 12월 24일 이전에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곳은 종전 규정대로 ▲분양신청 포기ㆍ철회자에 대해서는 분양신청기간 종료일의 다음 날로부터 150일 이내에 ▲분양대상 제외자에 대해서는 관리처분인가일 다음 날로부터 150일 이내에 현금청산 해야 한다.
이 때문에 개정 당시 기대됐던 이 조항의 효과는 사업 안정성을 위해 만들어진 부칙 탓에 상당 부분 희석됐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관리처분인가일 다음 날로부터 90일 이내 기간은 조합원분양이 완료된 시점인 데다 그에 따라 일정 액수의 분양 수입도 조합이 보유하고 있어 자금 사정이 비교적 여유롭다. ‘관리처분인가’가 사업 불확실성 해소로 인식돼 자금 조달을 수월케 해 준다는 점도 장점이라는 의견도 있다.
통상적으로 사업시행자는 사업시행인가 고시일로부터 60일 이내에 토지등소유자에게 분양신청에 필요한 사항을 통지한다. 분양신청기간은 그 통지일로부터 30~60일이다. 그 기간은 최대 20일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조례 등에 따라 사업시행인가 이후 시공자를 뽑는 서울의 경우는 사업시행자가 시공자와 계약을 체결한 날을 기준으로 해서 위와 동일한 절차를 거친다.
이래저래 조합은 시공자를 선정한 이후 그에 맞춰 조합원 분양신청 절차를 진행한다. 하지만 조합원이 분양신청을 한다고 해서 분양 대금이 바로 조합에 들어오지 않는다. 분양 수입 자체도 크지 않다. 일반적으로 ‘계약금-중도금-잔금’ 등의 순으로 분할 납부가 이뤄지는 데다 계약금은 전체 분양 대금의 10~20%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도금이 보통 ‘입주 직전 상환’이란 조건으로 대출이 이뤄지는 시장 관례에 비춰 볼 때 조합의 자금난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 다수 의견이다.
시공자 선정 당시 조합이 건설사로부터 받은 입찰 보증금도 현금청산 용도로 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공자 선정을 위한 입찰 과정에서 조합이 건설사로부터 받은 입찰 보증금은 시공자 선정 이전에 사용한 비용을 갚는 데 쓰이는 경우가 많다”면서 “조합의 자금 사정은 시공자 선정 이전과 이후에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조합은 현금청산을 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금을 차입하게 된다. 현금청산이 늘수록 금융비용도 덩달아 증가하는 구조라 최근처럼 현금청산이 급증하게 되면 앞서 살펴본 대로 조합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불가항력적 현금청산엔 조합의 자금 조달 경로 다원화 시급(!)
‘얌체족’엔 손해배상청구 등 철퇴 가할 ‘벌칙’ 법제화 필요(?)
여러모로 ‘골칫거리’인 현금청산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를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다. 업계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에선 사업 막바지에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현금청산을 택하는 ‘얌체족’에 철퇴를 가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동산ㆍ분양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이 해당 사업의 미래 가치를 부정적으로 판단해 사업에서 발을 빼는 행위는 인지상정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비사업 전문가 B씨는 “현금청산은 ‘사적자치의원칙’과 ‘사유재산권’ 등의 측면에서 보호돼야 할 성격이 있는 만큼 개인의 선택을 무작정 비난할 수 없을 뿐더러 이를 막기 위해 현금청산자를 제재할 법적 장치를 만드는 일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정비사업이 ‘공동사업’인 점에서는 현금청산자와 현금청산으로 인한 피해를 떠안게 되는 조합원을 구분해 전자에겐 ‘페널티’를, 후자에겐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는 방향의 논의를 공론화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사업성 제고를 위한 설계 변경이 현금청산을 줄여 주거나 그에 따른 피해를 메우는 데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설계 변경 시 사업시행 변경인가도 받아야 하고 이후 조합원 분양신청 절차도 다시 밟아야 한다. 사업 기간이 늘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더욱이 그에 따라 사업비도 늘어나게 되고, 2차 조합원 분양신청 당시 분양시장의 상황이 이전과 비슷하거나 악화될 경우 그 결과는 1차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점도 우려스럽다.
때문에 청산금을 지급키 위한 자금 조달 경로를 다원화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대책으로 꼽힌다. 시공자 대신 대한주택보증이나 주택금융공사, 일선 지자체 등이 보증을 서거나 신탁회사 등의 사업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편에선 ‘출구전략’을 원활하게 실행할 수 있도록 조합의 ‘매몰비용’ 지원을 확대ㆍ보완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시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현금청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좌초되는 사업도 증가할 것이란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난 14일 시행에 들어간 도정법 일부 개정안이 조합 매몰비용의 보전을 골자로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출구전략 활성화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만큼 서둘러 이를 보완해야 한다”면서 “아울러 최근 사업을 지연시킨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이를 참조해 무분별한 현금청산을 막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 현금청산 증가로 사업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의 한 재건축 구역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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