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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5구역 재건축조합에 떠도는 '찌라시'

서광 공인중개사 2014. 4. 16. 11:37

naver "북아현뉴타운을 만드는 사람들" ◈

 

방배5구역 재건축조합에 떠도는 '찌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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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5구역 전경.
'누군가는 만들고, 누군가는 뿌리고, 누군가는 캐낸다.'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찌라시:위험한 소문>의 포스터 문구다. 영화는 근거도 없고 실체도 없는 사설 정보지, 일명 ‘찌라시’로 인한 한 스타의 죽음과 그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매니저의 분투를 그렸다. 영화 속 증권가 찌라시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초고속 정보화 사회의 암울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올해 서울 강남권 재건축단지 중 최대어로 꼽히는 ‘방배5구역’이 찌라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다수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잡음이 끊이지 않는 재건축사업장에서 온갖 유언비어들이 난무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방배5구역은 그 정도가 심각했다. 먹구름이 드리운 현장을 찾았다.

◆건설사 '돈 살포' 괴문서에 '발칵'

지난 1일 오후 1시경 지하철 4·7호선 이수역 5번 출구로 나와 300m 정도 이동하자 오른편으로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띈다. 거기엔 ‘방배5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2014년 정기총회-임원선임 등’이라는 공지글이 적혀 있었다.

재건축사업의 꽃이라 불리는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는 만큼 후끈 달아오른 장면을 상상하며 현장에 도착했지만 방배5구역은 이상할 정도로 한산했다. 이유가 있었다. 지난 2월 시공자 선정을 위해 시행한 입찰이 한차례 무산되면서 건설사들이 숨고르기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당시 입찰에는 GS·포스코·롯데건설 컨소시엄만이 참여,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아 유찰됐다. 입찰에 앞서 열린 현장설명회에는 무려 18개의 건설사가 참여하며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지만, 입찰보증금 150억원 중 현금 비중이 75억원에 달하는 입찰조건을 맞추는 것에 부담을 가진 건설사들이 줄줄이 입찰을 포기한 결과였다.

이와 관련해 한 조합원은 “입찰이 한차례 무산된 것도 한몫 했겠지만 방배5구역이 조용한 이유는 따로 있다”며 “얼마 전 구역 내 배포된 찌라시가 분위기 침체의 주범”이라고 귀띔했다.

내용인 즉, 최근 방배5구역에 출처를 알 수 없는 괴문서가 돌았고 그 괴문서 안에는 GS·포스코·롯데건설 컨소시엄이 들러리를 세워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일부 조합 집행부에게 고가의 선물과 돈을 살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

실제로 기자가 조합으로부터 입수한 괴문서에는 입에 담기도 조심스러운 내용들이 상세히 폭로돼 있었다. ‘김OO씨 현금 1000만원, 활동내용 바람잡이’, ‘김XX씨 현금+선물(가방) 1300만원, 홍보 및 전화 설득’ 등 대의원 7명의 실명과 금품내역, 그리고 활동내용까지 명시돼 있었다. 몇몇 재건축사업장에서도 이 같은 괴문서가 배포된 바 있지만 실명까지 공개된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괴문서의 끝 부분에는 ‘시공사와 조합원 이름을 언급하다 보니 익명으로 보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방배5구역 대의원 드림’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 누가 어떤 의도로 이를 배포했는지 추측이 전혀 불가능했다. 진실의 유무를 알 수 없는 그야말로 괴문서다.

주민들에 따르면 일부 대의원들은 조합원 C씨가 괴문서를 배포했다고 주장하며 C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C씨의 무죄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경찰의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아무 것도 단정 지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괴문서 한장의 파장이 너무 크다는 것. 한 동네에서 수십년간 함께 지내온 이웃사촌들이 서로 헐뜯고 비방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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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가 입수한 문제의 '찌라시'
 
 
◆"안 받은 조합원 없다" 2파전 혼탁 

“아마 방배5구역에서 (향응을) 안 받은 사람이 없을걸요. 한번은 포스코건설에서 조합원들을 송도로 데려가 자사의 모델하우스를 구경시키고 호텔 밥을 사주더라고요. 사실 저도 그때 가서 밥 먹고 왔어요. 손톱 깎기 세트 하나 선물로 받았고요. 돈은 못 받았어요.”

자신을 방배5구역 조합원이라고 밝힌 A씨는 조심스레 본인의 경험을 털어 놓았다. 하지만 그리 놀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재건축사업장에서 건설사들이 시공권을 따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등 선을 넘다 적발되는 일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부동산시장 침체로 예전만큼 치열한 수주경쟁이 펼쳐지지 않다보니 그 횟수가 줄긴 했지만 금품·향응 적발 소식은 잊혀질 만하면 여지없이 터져 나온다.

혼란스러운 방배5구역의 분위기도 결국 시공권을 둘러싼 건설사들의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게 조합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방배5구역 시공사 선정의 경쟁구도는 2파전으로 압축된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일명 ‘LPG’라 불리는 GS·포스코·롯데건설 컨소시엄과 단독으로 나선 SK건설의 대결구도다. 딱 봐도 무게추가 한쪽으로 쏠리는 양상이다. 이에 SK건설도 짝을 찾아 나섰지만 경기침체 속에서 대다수 건설사들이 관망세를 보이고 있어 컨소시엄 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번 괴문서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대상이 괴문서에 직접적으로 언급된 GS·포스코·컨소시엄이 아닌 SK건설이라는 점이다.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수주경쟁에서 다소 밀리는 SK건설이 조합원을 포섭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대세다.

이와 관련해 한 조합원은 “사업 초기에는 SK건설을 지지하는 대의원이 더 많았지만 현재 상당수가 LPG 쪽으로 돌아선 상태”라며 “궁지로 몰린 SK건설로서는 상대 측을 지지하는 대의원을 몰아내고 새롭게 집행부를 구성해 입찰조건을 완화하는 등 다른 건설사들의 참여를 유도,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LPG와 붙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SK건설은 이같은 소문은 억측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괴문서 배포를 사주했다는 등의 소문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오히려 이번 유인물 사태로 브랜드 이미지만 실추됐다는 것이다.

SK건설 관계자는 “안 그래도 GS·포스코·롯데건설 컨소시엄에 비해 불리한 형국인데 좋지 않은 소문까지 나서 답답할 따름”이라며 “마치 온갖 찌라시가 난무하는 정치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5일 새롭게 집행부를 구성하고 재도약을 꿈꾸는 방배5구역 조합은 다음달 13일 다시 한번 입찰에 나선다. 입찰보증금 150억원을 현금이 아닌 이행보증보험증권으로 낼 수 있도록 하는 등 입찰조건도 낮추며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946-8번지 일대에 위치한 방배5구역에는 아파트 44개동 2557가구와 부대복리시설이 들어선다. 공사예정금액만 6707억
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대단지의 탄생을 앞두고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병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