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20년간 처치곤란"…
조합원 지위양도 제한 강화 '날벼락'
매일경제 | 2021.06.19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강화에
날벼락 맞은 재건축·재개발 소유자들
[매부리레터] "안전진단부터 얼른 받아놓고 재건축 준비하자는 입주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정책 발표 후 분위기가 싹 바뀌었어요. 안전진단 통과하면 이사 못 간다고, 안전진단 신청하지 말자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가뜩이나 재건축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재건축 시간만 더 길어질 것 같아요." (서울 동작구 준공 32년차 아파트 주민 A)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걸리면 바로 거래 제한되는 건데 소유자에게는 심각한 재산권 침해 아닌가요? 앞으로 재건축 아파트는 입주 때까지 '무슨 일 있어도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금청산 당할 텐데 이럴 거면 누가 재건축에 투자하겠어요? 정부가 집값 잡겠다면서 아파트 실소유자들의 재산은 이렇게 침해해도 되는 건가요?"(서울 반포 재건축 대상 아파트 주민 B)
재건축 재개발 조합원 지위양도를 제한하는 시점을 현행보다 더 빨리 앞당깁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재건축·재개발 지역의 투기수요 차단을 위해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시점을 앞당기기로 결정함에 따라, 재건축·재개발 대상 주택 소유자들이 "심각한 사유재산 침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이던 단지들은 내분이 생기는가 하면, 재건축 주택을 매수한 실수요자들은 "향후 거래가 끊길 것"이라며 불안에 떨고 있어요. 이들은 "더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해서 버티면서 기다리는 것인데 정부가 거래를 막고 주거이동을 막고 있다"면서 "집값 상승을 잡겠다고 서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 9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재건축·재개발 지역의 투기수요 차단을 위해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시점을 앞당긴다고 발표했습니다. 앞으로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단지는 안전진단 통과 이후부터, 재개발 구역은 정비구역 지정 이후부터 시·도지사가 기준일을 별도로 정해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시점을 앞당길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내용입니다.
조합원 지위양도는 한마디로 재건축·재개발 거래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재건축·재개발 물건을 산다는것은, 조합원의 권리를 사고 파는 행위니까요. 현재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부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죠. 즉 수도권에서 조합원 지위 양도, 즉 재건축·재개발 거래를 제한한다는 뜻입니다.
재건축은 기본계획수립 →안전진단 통과→정비구역지정→추진위 설립→조합설립인가→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인가로 진행되고요. 재개발은 기본계획수립→정비구역 지정→추진위 설립→조합설립 인가→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인가로 진행됩니다.
현재 서울은 재건축은 조합설립 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부터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거래 제한 시기를 재건축은 '안전진단', 재개발은 '정비구역 지정'으로 앞당긴다는 내용입니다.
거래를 제한한다는 것은 앞으로 서울에서는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아파트를 사도 입주권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신축아파트를 저렴하게 사려고 재건축·재개발 주택을 사는 건데, 비싼돈 주고 사놓고도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돼서' 입주권을 못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사려는 사람도 없겠죠. 재건축 아파트 주인들이 이제 사정이 생겨서 집을 팔려 고 해도 집을 팔 수 없고,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다음은 손동우 부동산전문기자의 일문일답.
손둥우 부동산전문기자 Q. 그러면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은 안전진단 통과, 재개발은 구역지정 이후 '무조건'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되나요?
A. 아니요.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아파트와 정비구역 지정된 재개발 사업지에 한해 시·도지사가 기준일을 지정한 경우에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시기가 앞당겨집니다. 다만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준일 지정을 요청하는 경우 시·도지사가 이에 응해야 하는 규정도 있어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기준일을 정하는데, 모든 곳에 기준일을 설정하는 게 아니라 일부 지역만 기준일을 정하게 된다." 이게 서울시 설명이에요. 그러니까 안전진단 통과한 재건축, 정비구역 지정된 재개발 사업지 중에 시·도지사가 별도로 또 '지정한' 경우 거래가 제한되는 거예요. 어떤 단지를 지정할지 모르니까 사업 초기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은 거래가 제한될 위험이 계속 존재하는 겁니다.
Q. 기준일 자체를 지자체장 판단에 맡기겠다는 건데, 이러면 어떤 단지는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되고, 다른 곳은 허용되는 상황이 펼쳐질 텐데요?
A. 네. 이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예를 들어 목동4단지와 5단지가 동시에 안전진단을 통과했는데 4단지는 지위양도가 되고, 5단지는 안되는 상황인 거죠. 이러면 당장 규제를 받지 않는 정비사업장으로 단기적인 풍선효과가 일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Q. 현재 조합 설립 전 추진위 단계인 재건축인 경우에도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될 수 있나요?
A. 네. 안전진단을 통과했기 때문에 지정 대상자가 될 수 있어요. 국토부와 서울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기존 규정을 적용받지만 투기 우려 등이 심할 경우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시점을 당길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Q. 서울시가 기준일을 정하지 않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지는요?
A. 기준일을 정하지 않은 곳은 예전과 동일한 규정이 적용돼요. 즉 재개발은 관리처분 전까지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하고, 재건축은 조합설립까지 가능합니다. 기준일이 지정되면 그 이후부터는 거래되더라도 매수자는 입주권을 갖지 못하고 향후 현금청산 대상자가 되는 거예요.
Q. 정비사업 조합원 지위 양도 시점이 안전진단 통과 시점으로 앞당겨지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걸리는 거 아닌가요? 보통 재건축 안전진단에서 조합 설립까지 몇 년 정도 걸리나요?
A. 네 맞습니다. 팔지도 못하고 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일반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될 때 5년 정도 걸린다고 하죠. 하지만 재건축·재개발은 주민 갈등 등 돌발변수가 많아서 10년이 넘는 경우가 다반사예요. 예를 들어 이제서야 분양하는 원베일리는 2002년에 안전진단 통과한 후 2015년이 돼서야 조합이 설립됐어요.
Q. 이번 재건축·재개발 규제 발표로 사정권에 들어오는 서울 아파트 단지는 얼마 정도 됩니까?
A. 매부리TV가 조사한 결과, 재개발은 정비구역 지정~관리처분인가 사이인 단지가 서울에 171개인데 145개가 이번에 강화된 규제 대상이 됩니다. 대부분 포함되죠. 재건축은 안전진단 통과~조합설립 이전인 곳이 46개인데, 안전진단 받지 않은 단지가 엄청 많으니 대상은 더 넓어지죠.
Q. 한번 지정되면 사업 완료 시까지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되나요?
A. 안전진단 통과일(안전진단 통과일 이후 정비계획 입안 전에 기준일을 정한 경우에는 기준일)부터 2년 이상 정비계획 입안이 없는 경우, 정비구역 지정일부터 2년 이상 추진위 설립 신청이 없는 경우, 추진위 설립일부터 2년 이상 조합설립 신청이 없는 경우에는 조합원 지위 양도를 허용해요. 지금도 조합설립 이후 3년간 사업시행인가 미신청, 사업시행인가 이후 3년간 미착공 등에 해당할 때 전매제한이 일시적으로 풀립니다.
Q. 하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예외(거래 제한이 되지 않은 경우)를 적용하지 않는다던데요.
A. 네.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예외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현재 서울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잠실동, 삼성동, 청담동, 대치동, 압구정, 여의도, 목동, 성수 등이죠. 이곳은 2년 이상 정비계획 입안이 없는 등 조합원 거래를 허용하는 '예외' 상황일지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조합원 거래를 제한한다는 뜻입니다.
Q. 이미 사업이 진행 중인 정비사업장에도 이번에 발표된 새 규정이 적용되나요?
A. 네. 특히 조합이 이미 설립돼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정비사업장까지 적용될 예정이라 '소급입법' 논란까지 불러올 전망입니다. 지금 잠실5단지나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일시적으로 지위 양도 제한이 풀린 상태인데 만일 9월에 개정법이 시행되면 바로 거래가 묶입니다. 조합 설립 이전 아파트야 말할 필도 없겠죠? '잠삼대청' '압여목성'에 주택을 구매하려면 매우 장기간 몸테크할 각오를 해야 할 거 같아요.
Q. 이번 규제가 시장 전체에 미칠 영향은요?
A. 많은 전문가들이 단기적으로는 안전진단을 막 앞둔 단지로 풍선효과가 불 거라고 예상하더라고요. 하지만 재건축·재개발이 지지부진할 경우에 매물잠김이 계속될 위험이 있죠. 이렇게 되면 새 아파트 쏠림 현상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안전진단 통과하기 전 초초기 재건축 단지, 이미 완공된 신축아파트의 몸값이 더욱 높아질 거란 얘기죠.
Q. 안전진단 통과한 재건축 아파트, 매수하려고 했는데 해야 할까요? 하지 말까요?
A. 이번 정책으로 중요한 것은 재건축·재개발 투자에 상당히 많은 불확실성이 생겼어요. 아직 법이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국회에는 재건축 아파트에 2년 실거주를 해야 조합원 지위 양도를 받을 수 있는 법안도 계류 중이에요. 그러니까 재건축은 현 상황에서는 실거주도 해야 하고, 거래가 제한될 수도 있는 여러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이에요. 앞서 얘기했듯이 재건축은 10년 걸릴 것을 각오해야 하죠. 장기간 사고 팔수도 없는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결정하셔야할 것 같아요.
정부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을 앞당기는 정책을 9월 중 입법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일각에서는 정비사업을 통한 민간공급에 긍정적이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건축 거래를 강화하는 규제를 내놓은 것에 대해 "앞으로 재건축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한 사전 포석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실상 재건축이 더뎌지는 것은 정부의 규제 못지않게 조합 간 내부 갈등이 큰 원인임을 감안하면 이번 규제로 "재건축·재개발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욱 커져 정비사업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많습니다.
서울 노량진뉴타운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투자자가 적으면 재개발, 재건축은 늦어진다. 매도자들이 빨리 팔고, 매수자들이 들어오면서 손바뀜이 활발해져야 사업 속도가 빨라지는데 이번 발표는 집값이 조금이라도 오르는 기미가 보이면 언제든지 '거래 금지'로 묶겠다는 정부의 엄포"라면서 "재건축에 한번 물리면 20년간 집을 팔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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