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표 뉴타운 퇴출전략이 발표된 지 한 달, 뉴타운 해제 유력지역으로 찍힌 곳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 22일 실태조사를 위한 사전조사 성격의 갈등조정관 현장 파견이 시작되면서 이른 시일 내에 등 가시적인 사업추진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구역해제를 피할 수 없다는 위기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들 구역에서는 해제를 둘러싼 근거 없는 악소문으로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그동안 사업반대를 주장해온 비상대책위원회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주민 반대가 많은 구역에게 이번 출구전략은 살생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 박원순 기류가 심상찮다. 국토해양부 장관이 직접 나서 서울시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데 이어 일선 구청들의 항명 사태도 이어졌다. 주민들도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대규모 시위로 맞불을 놓고 있다.
▲국토부-서울시, 팽팽한 평행선=지난 13일 권도엽 장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울시 뉴타운 출구전략의 반시장적 효과를 검증·분석하고 있다”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실무협의를 통해 조정하겠다”고 불편한 심사를 숨기지 않았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이미 구역해제를 둘러싼 매몰비용을 두고 한바탕 신경전을 벌였던 터라 자칫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사업비 부담이나 개발이익이 민간(조합원)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사업이 중단된다고 해서 사업 추진과정에서 소요된 비용을 정부재정으로 지원하는 것은 정부재정의 사용목적에 어긋나고 타당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국토부와 서울시는 출구전략 방식에 대해서는 절충점을 찾았다. 지난 15일 국토해양부 주택토지실장 주재로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3개 지자체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2차 주택정책협의회에서 추진위원회와 조합이 구성된 구역은 토지등소유자의 10~25%이상이 자발적으로 요청할 경우에만 해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현재 서울에서 추진위와 조합이 구성된 뉴타운·재개발 구역은 각각 182곳, 111곳 등 총 293곳이다. 이들 지역은 토지등소유자의 최소 10%이상이 요청하면 구청장이 실태조사를 벌이고 소유자의 50%이상이 동의하면 구역 해제가 추진된다. 추진위나 조합이 없는 317곳은 예정대로 서울시와 구청장이 직접 실태조사를 벌여 소유자의 30%이상이 찬성하면 구역 해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으로 국토부와 서울시는 추진위와 조합이 설립된 뉴타운·재개발 구역의 경우 오는 8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과 지자체 조례 등 하위규정을 마련한 이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요청하는 경우에만 실태조사를 벌여 해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건축 소형주택 의무비율을 올리고, 국민주택규모(전용면적 85㎡)를 65㎡로 축소 조정하자는 서울시의 입장에 국토부가 반대하고 있어 충돌은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청은 항명, 주민은 시위로 맞짱=일선 구청들의 출구전략에 대한 반발 분위기가 25개 자치구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박 시장 취임 이후 눈치만 살피던 강남지역의 여권 출신 지자체장들이 가장 먼저 반격에 나섰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개포지구의 소형주택 50% 강화방안은 받아 들일 수 없다”며 “주민들의 재산권 보호 의무가 있는만큼 서울시에 강력한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진익철 서초구청장도 “재건축 계획이 무더기로 보류되면 공급부족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이 입게 된다”며 “주민들의 사업참여 의지가 높은 곳은 확실하게 도와줘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소형주택 50% 강화’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개포지구 재건축을 필두로 공공관리 시범지구인 한남 뉴타운에서도 오는 28일과 29일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는 등 반 박원순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경기도, 입법예고… 서울시도 이르면 이달 내에=지난 1일 개정·시행중인 〈도정법〉과 〈도촉법〉에 따라 시도별 조례도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먼저 경기도가 관련 조례를 입법예고한데 이어 서울시도 이르면 이달 내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지난 17일 구역지정 요건 강화 및 추진위·조합 해산 요건 등을 담은 〈경기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입법예고했고, 21일 해제지역의 정비사업 전환 동의율 등을 담은 〈경기도 도시재정비 촉진 조례〉 일부개정안도 입법예고했다.
서울도 이달 안으로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와 〈서울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조례〉에 대한 개정방침을 정하고 입법예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시의회 업무보고자리에서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는 “오는 4월 조례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해 심의를 받을 계획”이라며 “이르면 5월 초 조례안이 공포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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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위·조합이 설립된 293곳은 실태조사 제외해야”
■ 업계 반응
박원순표 뉴타운 출구전략 실태조사 대상 610곳 가운데 추진위나 조합이 설립된 293곳은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태조사가 오히려 사업을 지연시켜 주민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갈등만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시공자를 선정한 경우 사업추진에 대한 주민합의가 이뤄졌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주택협회는 지난 10일 서울시 이건기 주택정책실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서울시 뉴타운 출구전략 시행에 따른 사업지연, 매몰비용 처리, 주민갈등 등 업계 애로사항을 전달하고 이같이 요구했다.
권오열 상근부회장은 “추진위나 조합을 설립해 시공자를 선정한 구역은 실태조사 대상구역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조합 해산시 시공자로부터 대여받은 사업경비를 보조받을 수 있도록 출구전략에 대한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권 부회장은 또 “서울시 주택공급 물량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현금청산자 급증, 기반시설설치비용 부담, 잦은 정책변경과 심의기준 강화 등으로 사업성이 악화되면서 장기표류하고 있다”며 “용적률 상향 등을 포함한 활성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밖에도 △용적률 인센티브와 상관없이 국공유지 무상양도 확대 △공공관리 임의선택 △조합설립인가 처분의 하자 치유 근거 마련 △현금청산 기산일 및 청산기간 조정 △서울시 정비사업 표준계약서 합리적 개선 등을 건의했다.
이에 대해 이 실장은 “뉴타운 출구전략은 사업추진 가능여부의 옥석을 구분해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함”이라며 “주택협회 건의사항에 대해서는 사안별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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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율 80%·권리금 인정
사실상 ‘정비사업 죽이기’
사실상 ‘정비사업 죽이기’
■ 세입자 대책
상가세입자의 권리보장을 위해 법 개정을 요청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약속대로 서울시가 상가 세입자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 현행 75%인 조합설립 동의율을 80%로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박원순표 재개발·재건축 출구전략’이 사실상 ‘재개발·재건축 죽이기’라는 게 점점 드러나고 있다.
지난 15일 제12차 주택정책협의회에서 서울시는 상가세입자들의 정비사업에 대한 반대가 극심해 사업추진이 어려웠던 점을 개선하기 위해 휴업보상금 확대 등 상가세입자에 대한 실질적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이를 위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추가로 개정해야 하는데 정부가 적극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
휴업보상금 외에 서울시가 주장하는 실질적인 대책이라는 게 사실상 권리금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이에 대한 법적 논쟁이 다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가세입자는 철거나 이전기간 중 휴업 또는 영업폐지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현행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46조와 제47조에 관련 규정이 마련돼 있다.
문제는 권리금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 관행이며 〈민법〉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아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리금은 크게 시설권리금, 영업권리금, 바닥권리금의 3가지 유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권리금 자체는 영업시설·비품 등 유형물이나 거래처, 신용, 영업상의 노하우 혹은 점포 위치에 따른 영업상의 이점 등 무형의 재산적 가치의 양도 또는 일정 기간 동안의 이용대가로 보고 있다.
지난 7일 박 시장은 이른바 ‘용산참사’로 구속 수감된 8명을 사면해 달라는 건의서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건의서에서 “현재 구속 중인 8명의 철거민들은 범법자이기 이전에 도시재개발 과정에서 생계 터전을 잃고 겨울철 강제 철거의 폭력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못하고 절망했던 사회적 약자”라며 “용산 사고로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사는 그들에게 사고의 모든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사면 건의 이유를 설명했다.
또 서울시는 현행 75%인 조합설립 동의율을 80%로 강화해 줄 것도 요청했다. 조합설립인가 요건을 어렵게 해 사업추진 자체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도정법〉 제16조에 따르면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의 경우 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전체 토지등소유자의 3/4이상 및 토지면적의 1/2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재건축의 경우 동별 구분소유자의 2/3이상 및 토지면적의 1/2이상 동의와 전체 구분소유자의 3/4이상 및 토지면적의 3/4이상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밖에 서울시는 추진위 해산시 매몰비용의 50% 정부 지원을 비롯해 △해제지역의 기반시설 설치비용 등 소요재원 공동분담 △마을 만들기 중심의 정비사업 전환을 위한 〈도시개발법〉 〈도정법〉 〈주택법〉 등 관련법 개편 등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