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사업 반대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
“재건축 추진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 양쪽에서 조합원 인감을 받으러 다니느라 난리입니다. 양쪽 이야기가 너무 다르니까 어떻게 결정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온 동네가 시끄럽습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8-1구역 주민 정모씨)
“이번에 해제 구역으로 지정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재개발이 됐으면 분담금 때문에 빚더미에 앉거나 이 동네로 다시 못 들어왔겠죠. 내 집 안허물고 살 수 있다고 하니 좋아요.” (서울 관악구 봉천동 8-2구역 주민 이모씨)
서울시가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사업 정리 우선 해제구역 18곳을 발표한 지 이틀째인 15일. 18개 구역 가운데 2곳이 포함된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일대를 찾았다. 이곳은 구역해제 지정여부에 따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우선 해제대상인 관악 8-2지구는 비교적 평온했지만, 추진위가 설립돼 있는 8-1구역은 사업 반대 측과 찬성 측의 갈등이 격렬했다.
◆ 추진위 “구역해제될라. 조합 승인 서두르자”
우선 해제구역에 포함된 8-2구역 바로 맞은편 8-1구역에 위치한 서울 관악구 청룡동의 H공인중개사 사무소. 동네주민 5명이 모여 바쁜 손놀림으로 편지봉투에 풀칠을 하고 있다. 재건축구역에서 해제되는 데 힘을 실어달라는 편지다.
비대위의 회장 박모씨는 “지금까지 구청이나 서울시에서 재개발 반대 의견은 신경 쓰지 않아 외로웠는데 이번에 서울시가 실태조사를 나서준다고 해 반갑다”고 말했다. 주민 홍모씨(76)는 “집 2층에 세를 줘 그걸로 먹고 살고 있는데 재개발이 되면 갈 곳도 없고 생활도 막막해진다”며 “분담금을 낼 수 없어 개발이 진행되면 30년간 살아온 동네를 떠나야 한다”고 울먹였다.
8-1구역 재건축 사업추진위원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8-1구역 추진위원회 총무 김모씨는 “사업찬성률이 65%에 이르는데 서울시가 실태조사 운운하니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진행될 만큼 진행된 사업은 그대로 둬야 하는데 서울시가 잘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서울시는 정비예정구역 159곳과 정비구역 106곳 등 추진위원회가 없는 265개 구역의 실태조사를 6월과 10월 2차례에 걸쳐 우선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추진위원회가 설립된 8-1구역은 주민 10%의 동의를 얻으면 실태조사가 가능하다.
그는 “사업 찬성률 5%만 확보하면 조합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다”면서 “조합 인가를 받으면 구역해제가 쉽지 않은 만큼 이 작업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만약 실태조사하고 사업이 진행된다는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면 그간 사업이 지연된 만큼의 부담은 누가 책임질 건지 답답하다”고 가슴을 쳤다.
인근 A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8-1지구에는 단독주택에 세를 주는 노년층 가구가 많아 의견이 쉽사리 모이지 않을 것”이라며 “양쪽 모두 밤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인감을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 구역해제 8-2지구 “대여비 1억원 누가 내나?”
정작 이번에 해제 구역으로 지정된 관악구 봉천동 8-2지구는 조용하다. 이 곳은 면적이 작았던 데다 상가가 밀집돼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주민 이 모씨(76)는 “재개발된다는 소식만 나면 집값이 오르던 때는 지났다”며 “그런 시절이었다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분담금을 내려고 했겠지만 이젠 빚내서 새 아파트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윤종균 전 재건축사업 추진위원장은 “추진위 매몰비용 해결문제가 남았는데 다행히 우리 구역은 규모가 작고 조합원들 간의 연대보증이 없다”고 말했다. 8-2지구의 매몰비용은 1억원 가량으로 정비업체는 조합과 구청을 상대로 소송제기를 검토하고 있다.
노후 단독주택 소유자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다. 막판에 찬반의견이 비등했는데도 반대 의견에 힘을 실어줘 장기적으로는 재산에 손해가 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곳의 한 주민은 “어느 사업이건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나오기 마련”이라면서 “번듯하게 집이 들어서면 좋을텐데 반대 의견에 찬성 쪽 의견이 묵살된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다.
[연지연 기자 actres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