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조합원은 부자인가?
코리아리포스트 2013-02-19
- [기획 시리즈][정비사업,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 ① 총론 - 정비사업 조합원의 현실
[코리아리포스트=김진성기자]코리아리포스트에서는 주택경기의 침체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정비사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모색하는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기획은 본지 지난호(제90호, 2013년 1월 29일자)에 게재된 ‘정비사업도 손톱 밑 가시 뽑아주오’ 제하의 기사에서 언급한 내용 중 일부를 포함해 그동안 정비사업에 대해 만연해 있던 잘못된 인식 및 법·제도적 문제를 하나씩 짚어가며 진행할 예정으로, 이번호에서는 시리즈의 막을 여는 총론으로 정비사업 조합원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다. - 편집자 주
① 총론 - 정비사업 조합원의 현실
#1. 재개발사업 대상지에 작은 주택을 한 채 소유하고 있는 김개발씨는 최근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얼마 전 추진위원회에서 조합설립을 위한 동의서를 징구한다는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추진위원회 설립 당시에는 특별한 생각 없이 관망하고 있던 김씨지만, 조합설립은 본격적인 재개발사업의 진행을 의미한다고 하니 자신도 사업에 동의를 해야 하는 지 여부가 고민된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예전부터 살아왔던 동네가 더욱 발전된 주거환경으로 바뀔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만큼 동의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정작 김씨로서는 달라진 주거환경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문제다.
차후 발생하게 될 막대한 분담금을 마련하는 것은 대출을 감안 하더라도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재개발이 진행된다면 이사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들 일각에서 들려오는 “재개발을 하게 되면 그동안 정들어 살아왔던 집을 송두리째 뺏기게 되는 것인 만큼 사업에 동의하면 안된다”는 성낸 목소리를 무조건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열악하지만 지금의 환경에서 변함없이 사는 것이 좋은 것인 지 판단이 쉽지 않다.
#2.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는 한 아파트단지의 소유자 이건축씨. 이씨는 ‘내집 마련’이라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수십 년간 노력한 끝에 몇 해 전 결국 원하는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를 자신의 보금자리로 만들었다. 자금 여력이 부족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낡은 아파트인 탓에 불편한 점도 많이 있지만, 이씨는 자신의 힘으로 집을 마련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건축씨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재건축이 진행돼 새로운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지만,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대출을 받아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구입 당시 받은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납부하는 것은 어느 정도 여력이 됐지만, 여기에 또 한 번 대출을 받을 경우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혹자는 “일단 사업에 찬성했다가 추후 집값이 올랐을 때 매매하고 다른 집을 구매하는 것이 무조건 이익”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막상 재건축이 코앞에 닥치고 나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흐름은 ‘주거복지’에 맞춰져 있다. 재건축·재개발 등의 활성화를 강조하던 예전 선거 분위기와는 달리 지난해 진행된 양대 선거 후보자들 및 각 정당들은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각종 주거복지 공약을 내놓았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당선인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이는 정치인들이 국민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주거 문제의 걱정을 덜어주겠다고 나서고 있는 셈이니, 공약의 이행 여부에 관계없이 일단은 좋은 분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비사업 관계자들로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서민들의 주거복지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정작 정비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는 쉽게 들을 수 없게 된 탓이다. 주거복지를 이야기 하면서 정비사업을 빼놓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정비사업의 조합원들은 모두 서민이 아니고, 주거복지의 개념이 필요 없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비사업 예정지 혹은 정비사업 진행 구역에 집을 소유하고 있는 토지등소유자들은 모두 서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정비사업, “변해야 한다”
지난1월 28일 국토해양부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와 공동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나선 한양대학교 이명훈 교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방침’이라는 제하의 발표를 통해 정비사업의 성과 및 한계를 짚어보고 정비정책의 과제를 살펴보는 한편, 정비사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강조했다.
발표에 따르면, 정비사업은 그동안 도시 내 신규주택 공급 및 대도시 주택난 완화에 기여 했으며, 소형주택 및 공공임대주택 공급 및 불량주거지의 주거환경개선 및 기반시설 확충에도 큰 몫을 해냈다. 하지만 △재정비지역 주변 주택가격 및 전세가격 상승 △전면철거에 의한 아파트 위주의 주택공급 △민간의 자금을 이용한 사업성 위주 개발의 한계 △재개발 후 가구수 개념의 실질 주택물량 감소 등의 문제점 및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특히 이 교수가 발표를 통해 지적한 정비사업의 문제점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정비사업 지역의 원주민들과 관련된 내용이다. 원주민의 특성을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토지등소유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합으로 사업이 진행돼 소득수준이 낮은 집주인과 세입자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됐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 및 정비사업인가의 원론적인 문제가 제기됐다는 것.
이 교수가 발표 자료를 통해 밝힌 길음 뉴타운의 예를 살펴보면,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길음2구역의 경우 26.8%, 길음4구역의 경우 24.4%, 길음5구역의 경우 22.6%로, 세 개 구역 평균 2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사실 정비사업 원주민 재정착률의 문제가 회자된 것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비사업 전문가들은 꽤 오래전부터 “통상적으로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나면 원주민들의 재정착률이 10~20% 수준”이라며 “원주민 재정착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같이 정비사업 현장의 재정착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정비사업 조합원들이 추가부담금을 부담할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앞선 발표 자료에 따르면 저층 주거지 조합원들의 평균소득은 294만원, 평균순자산은 2억9500만원 수준. 사업 후 전용면적 60㎡ 규모에 입주한다고 가정한다면 부담금을 지불할 수 있는 가구는 약 43%이며, 대출을 고려(DTI 30% 적용)한다면 지불가능 가구가 약 92.8%가 된다. 하지만 85㎡ 규모 입주를 가정한다면 지불가능 가구가 전체의 약 14%로 떨어지게 되며, DTI 30%를 감안한 대출을 고려한 지불가능 가구도 약 21.4%에 불과하다. 정비사업 이후 평균주택규모로 입주하려고 해도 분담금의 부담능력을 갖춘 조합원들이 소수에 불과해 사실 상 조합원들의 입주가 어려운 현실이다.
전체 조합원들의 평균을 통해 알아본 수치는 그나마 긍정적인 편이다. 고령 조합원들의 현실은 더욱 열악하기 때문이다. 정비사업구역의 고령 가구 평균 소득은 150만원, 평균순자산은 2억5128만원이며, 사업 완료 후 전용면적 60㎡에 입주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조합원은 전체 조합원의 약 14%(대출 고려 시 약 57%), 85㎡에 입주할 수 있는 조합원은 약 8%(대출 고려 시 약 8.03%)에 불과하다. 결국 정비사업 구역의 고령 조합원들은 재입주할 수 있는 계층이 극소수에 불과한 셈이다.
이명훈 교수는 또 이와는 별도로 영세 가옥주에 대한 문제도 정비사업의 과제로 제기하기도 했다. 월평균가구소득이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50%이하인 가구이면서 전용면적 40㎡ 이하에 거주하는 주택소유자 가구의 경우 세입자와 마찬가지로 정비사업으로 인해 주거불안을 겪는 가구임에도 불구하고 가옥주라는 이유로 가장 열악한 개발환경에 직면하게 되는 만큼 지구지정 이전 해당 구역에서 계속 거주한 영세 가옥주에 대한 보호대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정비사업의 패러다임, 어떻게 변해야 하나
여느 법과 마찬가지로 정비사업 진행의 절차를 명시하고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또한 제1조를 통해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 법은 도시기능의 회복이 필요하거나 주거환경이 불량한 지역을 계획적으로 정비하고 노후·불량건축물을 효율적으로 개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주거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도시정비법의 목적이다.
다시 말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은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도시환경 개선 및 주거생활의 질 향상을 위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앞선 자료 등을 굳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부동산을 투자의 개념으로 보고, 정비사업을 통한 자산가치의 상승을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한 사람이 아니라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지역의 조합원들은 결코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언뜻 생각해봐도 부유하다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기위해 주택을 매입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미나에서 제시된 정비정책 현안 타개를 위한 패러다임 변화는 △주택중심에서 사람과 생활환경중심으로 변화 △전면철거에서 지역여건에 맞는 도시정비방식으로 변화 △양적인 수요에서 질적인 수요로 변환 △민간중심에서 공공과 민간 파트너십 강조 △저소득층 주거지원 개념에서 보편적 주거복지로의 변환 등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앞서 강조한 정비사업 조합원들의 주거권 보호를 위해서는 다소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재건축·재개발 등을 진행해 재정착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면 다른 방식의 정비사업을 통해 주거환경개선을 꾀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현재의 정비사업 방식이 필요한 지역이 존재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현재의 방식을 선택한 조합원들의 주거권도 보호돼야함은 당연한 이야기다. 물론 재건축·재개발 등 전면철거 방식의 정비사업을 택한 조합원들에게 특혜를 줘야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문제는, 현재 대부분의 정책 등은 조합원들의 현실과는 상관없이 “정비사업은 무수히 많은 개발이익을 불러오는 만큼 이익의 일정부분을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치부하듯 기반시설 설치나 임대주택 마련 등 많은 부분을 정비사업 조합원에게 떠맡기고 있는 데에 있다.
이제 정비사업이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님은 물론, 정비사업 조합원 대다수 또한 주택을 소유하고 있을 뿐 부유층이 아님을 인식하고 정비사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다.
김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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