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반발로 사업재개도 난망(難望)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순탄했던 재개발 사업이 서울시 뉴타운 정책 때문에 엉망이 됐습니다. 박원순 시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입니다.” (안태현 창신11구역 재개발 추진위 총무)
“원주민 내쫓는 사업은 그만둬야죠. 그동안 쓴 사업비는 추진위원들이 모두 부담해야 합니다.” (오형근 창신11구역 비대위 사무국장)
지난 15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의 창신·숭인 뉴타운. 지하철6호선 창신역에 내려 서쪽으로 뻗은 지봉로(路)13길에 접어들자 가파른 오르막이 펼쳐진다. 영세 재봉업체들의 재봉틀 도는 소리를 들으며 한양성곽께에 다다르니 낡은 저층 주택이 즐비하다. 1970년대 풍경을 간직한 이곳 창신11구역은 뉴타운 지구 지정 6년 만인 오는 8월 재정비촉진구역에서 해제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셈이지만 그 사이에 쌓인 묵은 갈등과 감정의 벽은 이 지역의 가파른 고갯길만큼이나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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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불어닥친 뉴타운 열풍은 오히려 창신 11구역에는 악재가 됐다. 뉴타운 지구로 지정되고 사업지역 범위가 확대되면서 구성원도 늘었다. 당초 288명으로 시작했던 재개발조합은 인근의 뉴타운 조합원들이 더해지면서 446명으로 몸집이 커졌다.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기가 더 힘들어졌고 사업청산도 더 어려워졌다. 현행법상 정비구역 해제를 신청하려면 추진 주체가 없는 곳은 주민 30%, 추진위가 있는 경우 과반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차라리 다른 구역처럼 사업이 지지부진했다면 청산이 쉬웠겠지만 재개발 사업으로 미리 진도가 나갔던 탓에 사업을 포기하려면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했다.
매몰비용 문제도 불거졌다. 창신11구역은 옛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서울시의 뉴타운 지구 지정고시(2010년)에 따라 지난해 뉴타운 추진위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2005년부터 사용된 사업비를 고스란히 넘겨받았다. 현 추진위가 과거 재개발을 추진하며 시공사인 한화건설로부터 지금까지 빌린 돈은 총 17억2087만원에 달한다. 만약 사업이 중단되면 비용의 70%까지 시 재정으로 지원받아도 조합원 1인당 최소 270만원 이상을 갚아야 한다. 뉴타운이 추진되면서 추가된 조합원들은 재개발 조합원들이 과거에 쓴 비용을 왜 부담해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고, 기존 재개발 조합원들은 추진위원들에게 책임을 넘기고 있다.
매몰비용 문제를 해결하려면 뉴타운을 포기하더라도 과거에 추진하던 재개발을 다시 추진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부동산 경기도 많이 식었고 주민들의 구심력도 약해졌기 때문이다.창신11구역 주택재개발 조합설립추진위원회의 안태현 총무는 “과거 잘 진행돼온 재개발 사업이 서울시의 일방적인 뉴타운 지구 지정으로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면서 8년 가까이 표류하게 됐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뉴타운보다 규모가 작은 예전 재개발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주민 조계형(58)씨는 “요즘 같은 시기에 3.3㎡당 1000만원도 못 되는 보상을 받고 세입자 보증금을 빼주고 나면 아파트 분양으로 차익은커녕 멀쩡한 집 한 채를 통째로 날리는 게 된다”며 “일반 재개발 사업이라 해도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창신11구역 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의 오형근 사무국장은 “사업을 청산하고 주민동의 없이 사용한 사업비도 추진위원들이 모두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업계에서도 창신11구역의 사업 재개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구역 내 S부동산(창신3동) 관계자는 “이제는 재개발 사업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주민들이 잘 알고 있다”며 “이미 동네 여론이 한쪽으로 쏠려 있어 사업을 재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오는 17일 추진위 해산동의서를 종로구청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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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