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올 8월 입주가 시작되면 더 이상 옛날의 아현이 아닙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지금 저렴한 매물 위주로 잡으세요. 돈 버는 길입니다.”(아현동 N공인중개업소)
올해 입주를 앞둔 아현래미안푸르지오(아현뉴타운3구역) 주변 공인중개업소에서는 부동산 경기침체 속에 때아닌 대목을 맞이하고 있는 듯 했다. 여느 뉴타운과 마찬가지로 일반분양가가 높게 책정됐지만 점차 미분양이 소진되고 최근 들어 차익실현을 위해 조합원 매물마저 꾸준히 나와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아파트 전용 84㎡의 기준층 일반분양가는 7억3900만원 선이지만 현재 매물은 6억3000만원~6억7000만원 선에 나오고 있다.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입주 전이라 자금 사정이 급한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저렴한 가격에 매물이 간혹 나오나 입주가 완료되면 이런 매물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지금 이런 매물을 잡아두면 후에 1억원가량 차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이 조합원 매물이 일반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는 사실은 뉴타운 업계에선 꽤 고무적인 현상이다. 오히려 다수의 뉴타운에서는 조합원 분양가가 일반분양가를 앞서는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현뉴타운이 비교적 순항하고 있는 이유는 입지적 장점에 있다. 이 뉴타운은 서울 도심과 가깝고 한강과 인접해 있는데다 지하철 2, 5, 6호선이 교차하는 교통 요지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2호선 이대역~아현역 구간은 구역 북쪽 경계에, 지하철6호선 대흥~공덕역 구간은 남쪽 경계에 있다. 동쪽으로는 지하철5호선 애오개역이 위치했다. 또한 이곳은 사방이 주요 상권과 연결돼 있다. 남쪽은 마포, 서쪽은 신촌과 홍대, 북쪽은 이대, 동쪽은 서울역으로 통한다.
▶극소수에 불과한 ‘되는’ 뉴타운=이처럼 높은 미래가치를 인정받아 뉴타운 사업이 순항한 결과 분양 단계에 도달한 단지는 올해 경희궁자이(돈의문뉴타운1구역), 북아현푸르지오(북아현뉴타운1-2구역)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설령 분양에 돌입했다 해도 높은 분양가로 또 한 번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7, 8월 잇달아 분양한 가재울뉴타운4구역(DMC파크뷰자이)과 왕십리뉴타운1구역(왕십리텐즈힐)은 경기침체와 고분양가 논란 등으로 미분양 상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한 손실은 조합원들이 져야 할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지난 2011년 12월 분양한 왕십리뉴타운 2구역 조합원들은 오는 2월 입주를 앞두고 조합 측이 미분양 등의 손실로 조합원들에게 1인당 평균 1억3000만원의 추가부담금을 전가시키려 하자 최근 조합장 해임에 나서는 등 조합 측과 일촉즉발의 신경전을 벌였다.
왕십리뉴타운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조합원들은 일반분양보다 20~30% 저렴하게 분양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왕십리뉴타운에서는 이런 관례가 깨질 것 같다”며 “일반분양가 4억9000만원 선인 전용 59㎡를 4억원선에 분양받기 위해 1~2억원 상당의 추가부담금을 낸 조합원들이 입주를 앞두고 미분양 손실을 메꾸기 위해 또 1억원 상당의 ‘추가추가부담금’을 내게 되면 결국 일반분양자보다 높은 가격에 분양을 받는 구조가 된다”고 설명했다.
시범뉴타운인 왕십리뉴타운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울의 대다수 뉴타운 조합에서는 뉴타운 해제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금까지 뉴타운 571곳 중 315곳을 조사해 200여곳에 추정 부담금을 통지했다. 서울 성북구의 한 뉴타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황기에 3억원 선에 거래됐던 대지지분 34㎡ 빌라 평가액은 1억6000여만원으로, 3억3000만원선인 전용 59㎡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1억7000여만원의 추가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 빌라를 3억원에 산 소유자는 4억7000만원에 전용 59㎡를 분양받게 되는 셈이다. 미분양 손실이 추가로 발생하면 여기에 다시 수천만원의 ‘추가추가부담금’이 발생한다. 이렇게 통보된 부담금을 조합원들이 미리 살펴본 뒤 50%가 해제에 동의하면 뉴타운을 해제할 수 있어 구역별 해제위원회가 출범하고 있다. 지난 6월엔 창신ㆍ숭인 뉴타운이 뉴타운 중 첫 해제를 결정했다.
▶‘안되는’ 뉴타운 처리방법은=지난 13일 성북구의 한 뉴타운 조합원들 20여명은 성북구청장실 앞에 드러누워 시위를 벌였다. 행정소송을 통해 현 조합장 직무대행이 조합장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조합장 직무대행이 지속적으로 활동 중인데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는 것. 이들에게 뉴타운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시위에 참석한 조합원 이말련씨는 “뉴타운 지정 이후 10여년간 이어진 갈등으로 우리 삶은 피폐할대로 피폐해졌다”며 “조합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구청장님께 마지막으로 호소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강남, 강남하는데 강남은 도로나 공원같은 기반시설을 다 무상으로 해줘놓고 강북 뉴타운은 도로나 공원 조성비용까지 모두 조합원이 부담하게 돼 있다”며 “강북에 사는 서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뉴타운은 필요없고 끝까지 내 집을 지키겠다”고 했다.
뉴타운사업을 통해 조합원이 높은 부담을 지는 현재의 구조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업성이 극히 높은 일부 뉴타운외 다수의 뉴타운에서 해제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뉴타운 건설현장. |
뉴타운 문제가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면서 정부와 서울시, 국회는 뉴타운 해법 마련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초 이른바 ‘뉴타운 출구전략 3법’이 국회 본회의를 일괄 통과하며 뉴타운 해제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국회를 통과한 3법은 뉴타운 매몰비용 손금산입 허용, 손금산입 채권범위 확정, 출구전략 시한 1년 연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건설사가 해산된 조합에 빌려준 사업비를 돌려받지 않는 대신에 세금을 일부 감면받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조합원들은 그동안 조합이 쓴 매몰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됐다. 또 뉴타운 해제시한을 올 1월에서 내년 1월까지로 연장받게 됐다.
아울러 시는 뉴타운 해제 지역에 기존의 전면철거 방식이 아닌 저층주거지 보전 및 정비사업(주거환경관리사업)을 도입해 적용 중이고, 도로와 맞물린 가로구역을 중심으로 층수제한과 조합설립 요건 등을 완화해 소규모 재개발을 수월하게 해주는 가로주택정비사업도 추진 중이다.
서울 뉴타운 중 최대 규모인 장위뉴타운의 11구역 뉴타운해제위원회 부위원장 정병호씨는 “뉴타운을 무작정 해제하자는 게 아니다”면서 “기존 뉴타운 틀 안에서도 조합원들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데 그런 요구가 전혀 수용되지 않아 최후의 방법으로 뉴타운 해제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