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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이 자꾸만 해임되는 이유…재개발 재건축 공사비 묻지마 증액 논란

서광 공인중개사 2020. 9. 8. 14:54

 

 

 

조합장이 자꾸만 해임되는 이유…

재개발 재건축 공사비 묻지마 증액 논란

 

 

 

 

 

 

한겨레 | 2020.09.08

 

재개발·재건축 ‘묻지마 증액’

사업시행인가 이전 시공사 선정한

개포1단지·개포4단지 갈등 지속

수천억 증액하고도 막연한 설명뿐

자료 달라면 ‘시간 걸린다’며 꾸물

 

커지는 공사비 투명성 요구

증액분 일반분양에 떠넘기던 관행

분양가 통제로 부담 전가 막히자

공사비 증액 두고 조합원들 민감

일반분양보다 비싸게 사야할 수도

 

지난 2016년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사무실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지역 재개발·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시공사의 불투명한 공사비 관행에 반발해 조합장을 해임 또는 교체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앞장서서 공사비 검증 제도와 같은 공공의 관리·감독을 강하게 요청하고, 정부에 관련 제도 개선을 청원하는 등 공사비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분출하는 모양새다.

 

6700여 가구 규모로 6월 착공에 들어간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장(개포1단지)은 불과 4개월 사이 전체 공사비의 37%에 이르는 6300억원 규모의 공사비가 증액된 일로 조합장 해임안이 발의됐다. 시공사 현대건설·에이치디씨(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은 지난 4월 1조6713억원대 공사비를 1조8798억원대로 2천여억원 늘린 뒤 8월에 또다시 3300여억원을 증액해달라고 요청했다. 개포1단지의 한 조합원은 “4월 최저 보장 공사비 1천억원 증액까지 더하면 6300억원이 넘고, 조합원 1인당 평균 1억을 훌쩍 넘는 추가분담금이 생긴다”며 “이게 끝이 아니고 앞으로 설계 변경 등 무슨 명목을 붙여서 또 인상할지 모르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공사비 증액 자체보다는 공사비 책정 과정의 불투명성에 반발하면서 건설사 근무 경력이 있거나 건축 분야 전문자격증이 있는 이들로 조합 내 ‘기술위원회’까지 꾸렸다. 한 기술위원은 “2016년에 본계약을 할 당시에도 시공사가 공사비 세부내역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액도 어떤 부분에서 이뤄졌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조합과 시공사 간 정보 비대칭을 해결할 수 있는 더 강력한 공공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6300억원대 증액은) 세대 수 60세대 증가, 지하주차장 확장 등으로 공사 면적이 3만평 늘었고 마감재도 애초 안보다 고급화한 결과”라며 “증액분을 포함한 전체 공사비 세부내역서는 8월21일 조합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공사비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일은 흔하다. 1만2천여 가구 규모의 최대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장은 2조6700억원대 공사비가 3조4100억원대로 7400억원 증액됐다가 ‘공사비 검증 제도’를 통해 지난 4월 한국감정원으로부터 2900억원의 감액 권고를 받기도 했다. 조합원 1인당 추가분담금 증액분이 1억2천만원에서 7400만원으로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 11월 도입된 ‘공사비 검증 제도’는 한국감정원 등 정비사업 전문 공공기관이 조합을 대신해 시공사 공사비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제도다.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 재건축 사업장은 공사비 검증 신청조건(조합원 20% 이상 동의)을 훌쩍 넘는 조합원 50%가 공사비 검증에 동의했지만 시공사가 공사비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조합이 신청 자체를 못 하고 있다. 윤석양 조합장은 “신청에 필요한 공사 세부내역서를 6개월 후에나 준다고 하니 조합이 시공사 때문에 법을 지키지 못할 판”이라며 “이미 공사가 시작된 1조가 넘는 초대형 공사이고, 착공한 지 8개월이 넘은 지금까지도 공사비 세부내역서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윤 조합장을 비롯한 개포4단지 조합은 지난달 19일 국토교통부를 찾아 ‘시공사의 공사비 관련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도록 공사비 검증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냈다.

 

개포주공4단지 시공사인 지에스(GS)건설은 “2000년 입찰을 받을 당시엔 세부내역서 없이 평당 공사비로 입찰을 받는 방식이었고, 2017년 도급계약 때도 면적 기준으로 공사비를 산출하는 것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며 “3천 세대, 1조원 규모의 공사라 한국감정원 공사비 검증에 필요한 세부내역서를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될 뿐 공사비 검증을 회피할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면적 기준으로 공사비를 산정해 불투명한 증액이 이뤄지는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2010년부터 조합의 설계도면이 확정된 사업시행인가 이후에 시공사를 선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개포주공1단지와 개포주공4단지는 2000년대 초반 사업시행인가 이전에 시공사를 선정한 탓에 공사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정비사업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지상층 공사비가 평당 500만원이 든다면 지하층은 절반밖에 안 드는데 연면적 기준으로 공사비를 정하면 쓸데없는 공사비가 늘어날 수 있다”며 “수량이나 단가 등 세부내역서가 있어야 설계 변경도 가능하다. 연면적이 증가됐다면서 불필요한 증액을 해버리는 관행이 바로 민간 정비사업의 폐단”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시공사 선정 단계부터 불투명한 공사비가 문제 되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대림산업을 시공사로 선정한 중구 신당8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해 있었던 국토교통부·서울시 합동점검에서 “공사비가 증액될 가능성이 있다”며 “공사비 검증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권고를 받았다. 조합이 제시한 설계도면에 따라 산출한 공사비 세부내역서(원안)와 시공사가 자체 특화설계를 적용한 공사비 세부내역서(혁신안)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시공사와 공사비 협상을 진행한 조합 협상단의 한 조합원은 “입찰할 때 특화설계 명목으로 스카이브리지나 인피니티 풀 등을 포함시켜 화려하게 설계를 해 오는 게 ‘혁신안’인데, 그걸로 건축심의 통과가 안 되면 공사비를 내리지도 않으면서 마감재 등을 하향하는 사례가 있다”며 “조합 설계 원안이 없으면 그럴 때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당8구역 역시 조합원 20% 이상이 공사비 검증 신청에 동의한 상태로,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시공사 변경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원안 제출은 법적 의무가 아니다”라며 “고급화를 위해 혁신안을 제시한 것으로 이미 조합 총회에서 결정된 사항”이라고 말했다.

 

노후 주거단지를 헐고 초고가 아파트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개발이익을 공유하며 ‘윈윈’했던 조합원과 시공사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문재인 정부 들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한 분양가 통제 및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민간 아파트 지난 7월29일부터)된 게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반분양’ 분양가를 크게 높여 조합원 부담을 떠넘기는 과거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특히 실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조합원의 경우 추가분담금을 대출로 막아야 하는 처지가 일반분양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몇년 사이 재개발·재건축 투자가 대중화하면서 몇억원씩 프리미엄(피)을 주고 조합원 입주권을 산 이들은 일반분양가보다 높은 가격에 아파트를 사야 하는 역전 현상도 생긴다. 개포주공1단지의 한 조합원은 “2000년대 초반 6억원 주고 산 13평에 계속 살다가 9억원 정도로 평가를 받았고 분담금(조합원 분양가 10억5천만원-권리가액 9억원=1억5천만원) 정도는 대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추가분담금이 계속 늘어나면 사정이 달라진다”며 “나중에 10억원 후반, 20억원 초반에 피 주고 들어온 조합원들은 추가분담금이 늘어나는 것에 저항이 더 크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재개발 구역의 한 조합원은 “일반분양가가 9억5천만원인데 내 경우 추가분담금까지 10억원을 넘길 것 같다”며 “가점제로는 신축아파트 당첨이 어려워 피를 주고 입주권을 산 실거주 목적 3040의 경우 추가분담금이 1천만원만 늘어도 대출을 추가로 받아야 하니 예민해한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