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官)’ 등에 업은 비대위
뉴타운·재개발·재건축 ‘반대’ 목소리 커져
2013-10-15 최종룡 기자
- 2013년 ‘비대위’ 활동 보고서
[코리아리포스트=최종룡 기자]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추진위·조합에게 ‘반대파’인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는 ‘골칫거리’며 ‘눈엣가시’다. ‘비대위’의 ‘활개’에 사업이 중단되거나 무효되는 등 어려움을 겪는 추진위·조합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권을 비롯한 뉴타운·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출구전략’을 찾기 위한 대안이 시행되자, ‘비대위’의 활동에 힘을 주고 있다는 조합·추진위들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전면철거식의 해묵은 재개발·재건축의 문제점들이 여실히 드러나자, 관이 나서서 재개발·재건축 구역을 해제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는 것이다.
‘비대위’는 서울시의 ‘실태조사’를 구실로 사업을 방해하기 위한 명분을 얻었고, 서울시와 구청은 뒤에서 ‘비대위’의 요구에 응하는 행정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북 재개발 B조합 관계자는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구역 해제를 위해 실태조사를 신청하여 사업이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며 “구청과 서울시는 비대위의 입장에만 귀 기울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대위 탄생기
관이 제대로 구실을 못해
‘찬성’이 있으면 ‘반대’가 있다. ‘양날의 칼’처럼 ‘비대위’는 전면철거 방식으로 ‘황금기’를 이뤄낸 재개발·재건축 사업史와 함께 시작했다.
하지만 ‘비대위’가 처음부터 도시정비사업 추진에 ‘치명타’를 날린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일궈낸 건설업의 활황기에는 뉴타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반대’의 설득력이 약했다.
강남의 한 부동산 전문가는 “건설업이 전성기였던 1980~1990년대 너도나도 ‘잘살기’위한 개발에 ‘딴지’대신 ‘목숨’을 걸었던 것은 그만큼 도시개발 사업이 실제로 ‘돈벌이’가 됐기 때문”이라며 “현재같이 침체된 부동산 상황에서는 ‘개발’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늘었고, 더 이상 도시개발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늘었다”고 말했다.
특히 용산4구역 남일당 화재 사건(2009년 1월 19일, 용산사태)은 용산4구역 철거민과 전국 철거민 연합회원 등이 재개발 사업의 ‘보상비’와 ‘강제철거’ 등에 맞서 비롯된 비극으로, 그간 곪아온 도시정비사업의 ‘고름’이 터진 대표적 예다.
서울 모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 ‘용산사태’가 보여주듯 일방적 밀어붙이기식 도시개발 사업이 시행되던 때는 지났다”며 “용산의 경우처럼 대규모 개발은 물론 도시정비사업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보상금 문제이며 분담금 문제인데, 이를 누가 해결해줬나? 지금 해결되고 있나?”라고 반문했다.
덧붙여 “용산사태 이후 등장한 ‘공공관리제’(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할 때 계획수립 단계부터 사업 완료 시까지 진행 관리를 구청장이나 SH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관리자가 주도하는 제도)에는 ‘사업기간 단축’과 ‘경비절감’에만 초점을 두고 있어, 지난 용산사태의 반성인 세입자 보상, 철거문제, 주민권 등에는 소홀해 주민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부동산 시장에 개입한 ‘관(官)’이 제대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수색·증산 촉진구역 내 A촉진구역 관계자는 “지금도 공공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주민들에게 떠안기는 행태를 계속 보이고 있다”며 “서울시의 실태조사가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주민들에게 찬반의 갈등을 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 활동기
관의 행정은 사업을 돕는 게 아니라 비대위를 돕는다?
그러나 도시정비사업 전반에 걸친 이러한 ‘비대위’의 활동을 반드시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만 몰아붙일 수는 없다. ‘비대위’의 존재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바르게 추진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틀어지고 엇나가려는 사업을 바로 잡는 ‘구심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구심점 역할을 하는 ‘비대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 도시정비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비대위’와 추진위·조합을 반대하는 ‘비대위’를 꼽을 수가 있는데, 전자와 후자 모두 얽힌 이해관계가 있어 자칫 꼬인 실타래를 잘못 풀면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흐른다.
춘천의 한 재개발 ‘비대위’가 지난달(9월) 26일 춘천시청 앞 광장에서 개발 사업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비대위 관계자는 “원주민을 내쫓는 사업에 동참할 수 없다”며 “재개발 후 들어서는 아파트에 실제 들어갈 수 있는 주민들은 17% 정도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합 측은 “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비대위 측의 주장은 조합이 왜곡된 정보로 주민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것이고, 조합 측은 비대위가 사업을 막기 위해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수색·증산 촉진구역 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증산 A촉진구역 내 상가를 운영하는 김씨(42,여)는 “며칠 전에도 20명에서 30명의 사람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꽹과리를 치는 등 반대의 목소리로 떠들썩했다”며 “개발을 하면 모두가 쫓겨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인근 추진위 관계자는 “뉴타운·재개발을 반대하는 이들은 매달 1회 이상 집회를 열고 시민들에게 무차별 홍보에 나서고 있다”며 “거리 소음이나 동네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이들의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서울 중랑구 중화동 C재개발 조합의 한 이사는 “개발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조합원들에게 하는 말이 ‘개발 사업이 시작되면 이사 비용만 1억여 원이 드는데 이주비와 이사비 1억 원이 없으면 길바닥에 나앉아야 한다’며 ‘왜 찬성을 하느냐’고 반대를 권유한다”고 말했다. 현재 청주 지역의 경우에도 재개발·재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중심으로 ‘청주재개발·재건축지역 주민생존권 대책위원회’가 결성돼 있다.
이른바 대책위는 “정부와 국회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 촉구, 청주시의 재개발·재건축 행정의 쇄신과 책임성 강화, 비민주적이고 무책임한 조합의 해산 운동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설립 이유를 밝혔다.
더불어 “원주민은 안중에도 없고 ‘개발이익’에만 눈이 먼 일부 조합 간부와 개발업자가 결탁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막대한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며 “재개발·재건축 조합의 구성과 운영 과정에 있어서도 주민의 참여와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결국 개발 사업으로 주민들이 손해를 보는 결과를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비대위와 추진위·조합이 펼치는 주장에 대해 내세운 ‘반대논리’을 들어보면 이들 주장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끊임없이 도마 위로 오르는 문제가 있다. 도대체 ‘관(官)은 무엇을 하고 있나?’다. 투명한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위해 그간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관리제’와 ‘실태조사’가 그 답이다.
비대위 전성기
실태조사는 ‘반대’ 편(?)
한남뉴타운 내에서도 주목 받던 용산구 이태원동 256번지 일대의 한남2구역. 사업시행인가를 준비 중이던 이 구역도 실태조사로 제동이 걸렸다.
작년 9월 24일 119명(전체 10.77%)이 실태조사 신청서를 제출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현재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가 한남2구역 조합원에게 우편 송달).
게다가 존치요구 민원제기(58명, 2011.11.30.), 조합설립인가 취소 처분 소송제기(5명, 2012. 8. 29.)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존치 시 용도지역·지구가 촉진계획 결정 이전으로 환원되며 계획도로가 변경 및 용적률 감소가 예상될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갈수록 커지는 ‘비대위’의 목소리는 재개발 사업 자체를 지연시켜 조합원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며 “특히 조합이 설립된 마당에 조합 설립 무효 등의 소송에 발목 잡혀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때, 조합원들이 감수해야 하는 매몰비용, 분담금 문제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개발 사업을 가로막는 비대위가 점차 규모가 ‘조직화’, ‘전략화’ 되고 있다. ‘비대위’의 세력은 그 폭이 넓고 ‘전문화’된 집단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더군다나 ‘실태조사에 경우 비대위 가이드라인’이 공공연하게 ‘비대위’ 카페를 떠돈다. 내용을 살펴보면 실태조사의 의의(목표)를 ▲50% 해산동의를 받는 것으로 하고, 실태조사에 임하는 전략으로는 ▲분양비는 낮게, 건축비는 높게 주장하여 추가분담금을 높일 것. ▲실태조사 결과는 추정치에 불과하므로 추가분담금이 실제보다 적게 발표된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한 문서 자료를 확보할 것 등 이 밖에도 상가 대책비, 현금청산, 서울시와 감사원 국토부에 민원 넣기 등 세세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한남동 뉴타운의 한 전문가는 “서울시로서는 ‘예산’을 들여 실태조사를 시행한 만큼 그 책임에 대한 부담이 있을 것”이라며 “더 이상 ‘접대용’ 실태조사 결과로 주민들의 반목을 야기하는 무책임 행정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남의 한 ‘비대위’ 관계자는 “사업의 투명성과, 주민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반대’가 있는 것이며, 사업을 ‘찬성’하는 측도 사실상 ‘비대위’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부분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것은 자신들의 “재산권을 지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수색·증산촉진 지구 내 한 토지등소유자 정씨(56,여)는 “반대 측은 원주민이 쫓겨 가는 것을 우려하고, 찬성 측은 모두가 함께 잘 살 것을 주장하는데, 어느 쪽이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10년째 계속되는 개발에 대한 주민 갈등은 이제 좀 풀고, 사업을 하든지 안 하든지 빠른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대위로 인한 갈등, 관에서 중심 잡아야…
서울 강동구의 알짜배기로 꼽히는 고덕2-1지구 단독주택 재건축 사업 역시 ‘비대위’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다. 현재 실태조사가 진행 중인 이곳에 ‘비대위’들이 해산동의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이미 작년(11월 5일)에도 고덕2-1지구 일부 주민들이 제출한 추진위 해산 신청서(246장)를 강동구청이 20여장만 효력을 인정하면서 요건 미달로 추진위 해산 신청이 반려된 적이 있었다.
고덕2-1지구 추진위 관계자는 “지금 ‘비대위’가 신청한 실태조사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며 “이르면 11월 하순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고덕 인근의 부동산업자는 “강동구의 경우 서울시나 구청이 비대위의 기를 살려 놓고 있다”며 “매 주민 설명회마다 비대위들의 활개로 서울시가 마련한 진정한 주민협의체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강북의 한 재개발 추진위설립을 앞두고 있는 구역의 중개업자 B씨는 “재개발한다는 소문만 들리면 사업을 찬성할지 반대할지, 그 중립에 선 분들이 많다”며 “반대의 소리가 높다고 다수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민감한 문제는 주민들 간 반목만 야기시킨다. 지금까지 근 10년 동안 이러한 갈등으로 지친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간 관도 제 역할을 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관의 관리·감독 문제가 제기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클린업시스템을 보더라도 그게 비록 ‘추정치’지만 그 사업성을 보는 중요한 척도인데, 서울시외 구청이 홍보를 하고 있지 않는 것도 자칫 분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주민 간의 갈등이 심각하게 대두되는 곳에서 관이 사업을 벌여놓고 책임 없이 빠진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그만큼 관이 중심이 되어 ‘찬성’과 ‘반대’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최종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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