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보호 위해 조합원 피해 감수해라?
코리아리포스트 2013-03-12
- 서울시, 철거 위한 사전협의체 구성·운영 발표… 조합원 재산권 침해 우려
[코리아리포스트=김진성기자]지난 겨울 우리는 유난히 추운 날씨와 잦은 눈으로 인해 많은 불편함을 겪었다. 큰 도로는 차치하더라도 이면도로 등은 미처 치우지 못해 얼어붙은 눈이 녹기도 전에 또 한 번 눈이 내려 쌓임에 따라 눈과 얼음을 치우기 더욱 어려운 상태가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량 운행이 어려워졌음은 물론이고 보행자들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말 그대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상황이 된 것.
하지만 봄이 가까이 오면서 이러한 불편함과 어려움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점차 사라졌다. 햇살이 따스해 짐에 따라 얼어붙은 눈 또한 저절로 녹아 이전처럼 통행에 큰 불편함을 미치지는 않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차량 운행 및 보행과 마찬가지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역시 그 어느 때 보다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에서 찾아온 국내 부동산 경기의 한파로 각종 특혜와 할인분양 등 특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분양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실태조사 및 출구전략 등으로 대표되는 정비사업 진행에 악영향을 끼치는 정책으로 인해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추진위·조합은 물론 각 협력업체들도 정비사업에 찾아올 봄을 기다리며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고, 정비사업은 개점휴업(開店休業) 상태가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된 통행의 불편함과 달리 서울시 정비사업은 봄을 맞이하기 직전에 또 한 번의 된서리를 맞게 됐다. 서울시가 정비사업 세입자 보호를 위해 새로운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밝히면서 오히려 토지등소유자들에게는 독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서울시 “강제철거 없는 재개발·재건축·뉴타운 정비사업 추진할 것”
서울시는 지난 2월 20일 “철거과정에서 발생하는 무분별한 철거와 강제적인 퇴거로 인해 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를 눈물 흘리게 하는 일이 없도록 강제철거 방식의 정비사업 관행을 바꿔 나가겠다”며 “재개발·재건축·뉴타운 정비사업 현장의 철거 과정에서 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가 거리에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조합·세입자 간 충분한 대화 창구를 마련해 강제철거 예방대책을 적극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비사업 현장에서 발생한 미 이주 세대에 대한 법원 집행관의 강제퇴거 조치 등은 사회적 갈등을 발생시켰고, 이로 인해 정비사업에 부정적 인식이 각인됐다는 것. 명도소송은 당사자 간의 입장 차이에 따라 진행되는 적법한 절차이지만 대화·협의 절차가 생략된 강제퇴거 조치로 인해 정비사업에 사회적 갈등현상이 상존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다.
구체적으로 시는 이와 같은 실정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법을 떠나서 강제철거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화와 협의로 해결을 유도하는 적극적인 행정을 시행해 나가기 위해 조합·가옥주·세입자·공무원 등이 함께하는 ‘사전협의체’를 구성·운영해 나갈 방침이다. 조합·세입자 등이 함께하는 협의체 운영을 통해 충분한 대화 창구를 마련하고 합의에 의한 이주를 유도함으로써 명도소송 제기 최소화, 사회적 약자의 주거권 및 인권 침해를 사전 예방해 나가겠다는 것이 시의 의지다.
사전협의체는 사업시행인가 신청 및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추진 중인 정비사업장별로 조합장 및 조합임원 2인 이상, 가옥주, 세입자, 공무원 등 총 5인 이상으로 구성되며, 기 관리처분인가 된 사업장의 경우 지난 2월말까지 구성을 완료하도록 했고, 미 인가 된 정비사업장은 관리처분인가 신청 전까지 사전협의체를 구성해 관리처분인가 신청 시 운영계획과 함께 관할구청에 제출하도록 했다.
사전협의체의 운영기간은 관리처분인가 시점부터 이주 완료시까지 조합, 가옥주, 세입자간 원만한 이주 협의가 안돼 명도소송 제기 우려가 있는 경우에 수시로 운영하고, 최소한 5회 이상 대화·협의를 거쳐 합의를 유도하되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도시분쟁조정위원회(위원장 부구청장)를 통해 조정하도록 했다. 또한 시는 사전협의체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사업시행인가 시 관리처분인가 신청서 제출 전 협의체 구성을 완료하고 운영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조건부 인가 처리하는 방안도 병행할 계획이다.
시는 이번 사전협의체 제도 발표와 관련해 “지난해 7월부터 강제철거가 우려되는 명도소송 진행 중인 25개 정비사업장을 대상으로 자치구의 협조를 받아 이주 및 철거 현황을 매주 점검하는 등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해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은 퇴거가 완전히 이뤄 진 후에 철거하고, 철거 과정에서 지속적인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독려해 나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현재까지 봉천 12-1구역, 신길 11구역 등 9개 구역이 강제철거 없이 이주 완료 했고 현재는 나머지 구역에 대해 매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서울시가 모니터링하고 있는 명도소송 진행구역은 금호20구역과 보문3구역, 상도10구역, 신사19구역, 신정4구역, 아현4구역, 용강3구역, 홍은12구역, 월계3구역, 현석2구역, 옥수13구역, 당산4구역, 만리2구역, 미아4구역, 북아현1-3구역, 신길7구역 등 16개 구역이다.
특히, 시는 관악구 봉천12-1구역의 경우 조합, 미 이주세대 및 자치구 공무원 등이 5차례에 걸쳐 협의를 진행해 세입자 전원 합의 하에 15가구 이주가 완료됐으며, 영등포구 신길11구역의 경우 지난 1월 18일 남부지방법원의 명도소송 결과에 따라 건축물 2동의 강제집행이 예정됐었으나, 자치구 중재 하에 조합사무실에서 조합장, 조합이사, 미 이주세대가 협의를 진행, 강제집행기일을 1주일 연장하고 연장 기일 내에 자진 이주했다고 밝혔다.
또한 시는 혹한기에 강제철거로 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가 거리에 내몰리는 경우 주거권을 넘어 생존권의 문제가 될 수 있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말까지 ‘동절기 강제철거 예방대책’도 수립, 시행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동절기에는 철거가 원칙적으로 금지됐으며, 거주자들이 모두 퇴거한 경우 등 제한적으로만 철거가 허용됐다.
한편, 서울시는 정비사업 현장에서 강제철거를 원칙적으로 금지시키기 위해 위와 같은 사전협의체 구성·운영 및 동절기(12월~2월) 철거 제한 등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명시할 수 있도록 국토해양부에 법 개정 건의 및 제도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방침이다. 또한 시는 입법화 이전까지는 조합, 사업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강제철거 예방대책 교육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서울시 이건기 주택정책실장은 “조합과 세입자 간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강제철거 없는 재개발·재건축·뉴타운 정비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제도화해 나감으로써 무분별한 건축물 철거와 강제적인 퇴거를 사전 예방하고, 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의 주거권 보호를 강화해 나가도록 힘 쓰겠다”고 말했다.
정비사업 관계자 “조합원 재산권 침해” 한 목소리
서울시가 이와 같은 제도를 만들고 나선 것은 기본적으로 정비사업에 따른 기존 주택의 철거 과정에서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입자의 경우 정비사업으로 인해 자신들의 거주공간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만큼 더 많은 보상금 등을 원하기 마련이고, 조합원들 역시 세입자들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각 조합들은 이주시기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며 이주를 하지 않는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이 판결에 따라 강제 퇴거조치 후 사업을 추진해 왔다. 서울시가 발표한 위의 정책은 이러한 흐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 이주시기 전 협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정책이 발표되자 정비사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세입자들의 권리를 강조한 나머지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조합원들에게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게 됐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기본적으로 정비사업은 토지등소유자들이 자신의 집을 투자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인데, 사업의 주체가 아닌 세입자들로 인해 정작 사업주체인 토지등소유자들이 재산권을 침해받게 됐다는 의견이다. “세입자를 무조건 약자로, 조합원들은 무조건 부유층으로 규정하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얼토당토하지 않은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위와 같은 사전협의체 운영은 정비사업 진행과정 상의 절차가 하나 더 증가했다는 점만으로도 기본적으로 조합, 나아가 조합원들에게 피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사업진행 기간 하루하루가 사업비와 연결돼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불리는 정비사업의 특성상, 이행해야 하는 절차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업비가 증가하고 조합원들의 손해가 커진다는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정비사업 진행을 위한 이주과정에서 이주를 늦추고 있는 세입자들이 과연 이주를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주를 ‘안’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것도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세입자들이 법으로 정해진 주거이전비를 보상받았음에도 이주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이주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일종의 알박기 행위를 하고 있는 경우라면 당연히 이들은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해야 할 의미가 없다.
이와 관련해 재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 조합장은 “정비사업 구역에서 보호가 필요한 세입자들은 주거이전비 등을 받고 제 시기에 이주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주시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를 늦추고 있는 세입자들은 이주가 늦춰질수록 사업의 피해가 간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악용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악질적인 경우가 많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또한 “결국 협의체구성은 이러한 악질 세입자이 보다 쉽게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미리 조합측과 협의할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협의체구성에 비판의 한 목소리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세입자 대책 등 사회적 약자 보호와 관련된 부분은 기본적으로 정부나 지자체 등이 해결해야할 문제이지 정비사업 조합원들에게 떠맡겨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정비사업 진행과정 상의 세입자 보호는 당연히 필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조합원들의 사유재산권을 무시한 채 위와 같은 형태로 진행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있다”며 “과도하게 행정이 개입해 각 구역마다 협의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강제하기 보다는, 세입자와 가옥주, 공무원, 정비사업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TF팀을 구성해 따로 정책개발을 하는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개발 & 재건축 달인^^ > 재개발 & 재건축 달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4.1부동산대책] "현금청산 시기" 관리처분인가 후 90일로 (0) | 2013.04.11 |
---|---|
뉴타운,재개발,재건축 현금청산, 궁금해요? (0) | 2013.04.01 |
대법원,“공란동의서 일괄 보충한 뒤 조합설립해도 유효” (0) | 2013.04.01 |
[이슈분석] 서면결의서 징구주체에 대한 논쟁 (0) | 2013.04.01 |
현금청산자 급증에 조합원들 허리 휜다 (0) | 2013.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