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용호2구역 판결 의미와 파장
“공란동의서 일괄 보충한 뒤 조합설립해도 유효”
하우징헤럴드 2013.03.14
신건물 설계개요 등 항목 비워둔채 동의서 징구
토지등소유자 동의 받았다면 정당… 구제길 열려
공란동의서를 징구한 후 추진위원회가 공란을 일괄 보충해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것이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다만 공란을 일괄적으로 보충하는 것에 대해 토지등소유자들로부터 위임을 받았다는 전제하에서다. 지난 1월 10일 대법원 특별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공란내용을 일괄 기재하는 데 동의하는 문구가 있었으므로, 소정의 필요적 기재사항이 포함된다면 동의서는 완성된다”며 “조합설립인가 신청 당시 동의서에 필요한 기재사항이 모두 기재되어 있으므로 조합설립인가 처분에 하자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공란동의서 징구 후 토지등소유자의 위임을 받아 조합설립동의서를 작성한 구역들의 조합설립인가 취소나 무효 소송은 사실상 조합 승소로 종결짓게 될 전망이다.
▲대법원 “토지등소유자 동의하에 공란동의서 일괄 보충… 동의 철회도 가능하지만 의사표시 없었으므로 유효”=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용호2구역은 ‘신축건물의 설계개요’ 등 주요내용을 빈칸으로 비워둔 채 조합설립동의서를 징구한 것이 소송의 발단이 됐다.
당시 추진위에서는 ‘신축건축물의 설계 개요’ 등 주요내용을 빈칸으로 비워두고, “공란은 조합설립 창립총회에서 확정되는 내용으로 일괄기재하고, 별도의 동의서를 징구하지 않은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후 창립총회에서 공란 내용을 일괄적으로 기재하는 것에 대해 결의를 받은 후 동의서 공란을 스탬프로 찍어 내용을 보충하고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우모씨 등 일부 조합원들은 “법정사항이 누락된 동의서를 제출받은 것은 적법한 동의로 볼 수 없으므로 조합설립인가는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조합설립동의서에는 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에서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한 ‘신축건축물의 설계 개요’ 및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의 개산액’에 관한 사항이 공란으로 되어 있었으나, 동의서 말미에 조합설립 창립총회에서 확정되는 사항을 공란에 일괄 기재하는 데 동의한다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다”며 “창립총회에서 확정된 사항을 공란에 기재하면 필요적 기재사항이 동의서에 모두 포함되어 동의서가 완성된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추진위가 토지등소유자들로부터 공란을 일괄적으로 기재하는 것에 동의를 받았다면 조합설립동의서는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이 같은 판단 근거로 재판부는 먼저 조합설립동의서를 반드시 토지등소유자가 직접 작성하도록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구 도정법 및 시행령 등에는 주택재개발정비구역 내 토지등소유자가 주택재개발사업의 시행을 위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의 설립에 동의한다는 의사표시를 반드시 토지등소유자 본인이 하도록 요구하지 않고 있지 않다”며 “추진위원회는 동의서의 공란을 자의적으로 보충한 것이 아니라 토지등소유자의 개별 동의하에 토지등소유자들의 다수 의견이 반영된 창립총회 결의사항을 공란에 보충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토지등소유자가 추진위에서 동의서를 일괄적으로 보충하는 것에 대해 철회를 할 수 있었음에도 철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동의서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토지등소유자들은 창립총회 결의사항이 의사에 반할 경우 추진위원회를 상대로 개별 동의를 철회한다는 의사표시를 해 동의서의 완성을 저지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철회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추진위원회가 동의서를 완성한 후 조합설립인가 신청을 하도록 용인한 토지등소유자들은 동의서의 효력을 계속 인정한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H&P법률사무소의 박일규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백지 동의서라 하더라도 토지등소유자들의 동의에 기초해 보충된 것이라면 유효하다는 점을 명확히 정리한 것”이라며 “그동안 관행적으로 토지등소유자에게 공란 보충을 위임받아 설립된 조합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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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계획 확정되지 않아 공란동의서 징구 불가피
■ 소송 어떻게 진행됐나
이번 소송이 제기된 용호2구역은 지난 2005년 9월 부산광역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재개발정비예정구역으로 고시됐다.
가칭 추진위원회 대표자인 조모씨는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된 후 추진위원회 동의서를 징구해 2005년 11월 전체 토지등소유자 352명 중 205명의 동의를 받아 추진위원회 승인을 신청했다.
이에 부산 남구청은 이듬해인 2006년 1월 추진위원회를 승인했고, 추진위원회는 2006년 4월부터 조합설립 동의서를 징구했다. 당시 동의서에는 ‘신축건물의 설계개요’, ‘건축물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란이 모두 공란으로 되어 있었다.
다만 동의서 말미에 “상기 공란은 조합설립 창립총회에서 확정되는 내용으로 일괄기재하고, 사업계획 변경에 따른 10% 이내의 변경에 대하여는 경미한 변경으로 별도의 동의서를 징구하지 않는 것에 동의합니다”라는 문구를 기재했다.
이후 부산시는 지난 2006년 5월 해당 구역의 면적을 기존 3만5천400㎡에서 5만1천㎡로 늘리는 내용의 정비기본계획 변경을 고시하고, 2008년 5월에는 해당 구역을 용호2구역 주택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고시했다.
이에 따라 추진위는 2008년 6월 창립총회를 개최해 김모씨를 조합장으로 선출하고, 동의서의 공란을 추진위원회가 일괄적으로 기재하는 것에 대한 결의를 받았다.
이후 2008년 7월 추진위는 ‘신축건축물의 설계개요’와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등 공란 부분을 스탬프로 찍어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했다. 이에 남구청에 471명 중에서 360명(동의율 76.4%)이 동의했다고 판단하고, 2008년 9월 조합설립을 인가했다.
하지만 우모씨 등 일부 조합원은 공란동의서를 징구한 것에 대해 무효라고 주장하고, 창립총회에서 일괄 보충에 동의한 사람이 252명으로 동의율이 53.5%여서 조합설립동의율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부산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윤인태)는 “동의서 기재사항이 누락된 채 제출된 동의서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창립총회에서도 3/4 이상의 찬성을 받지 못했으므로 조합설립동의서를 일괄 기재한 것은 효력이 없다”며 무효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부산고법의 판결을 뒤집고 보충권한을 위임받은 동의서는 유효하다고 판결하고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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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도정법 개정 이전에
조합설립인가 받은 곳 수혜
■ 어떤 조합 구제되나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합설립동의서 징구 시기가 명확하지 않았던 2008년 이전에 추진위가 공란동의서를 징구해 일괄 기재한 조합설립동의서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행 〈도정법〉에서는 정비구역을 지정받아야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지만, 지난 2008년 이전에는 추진위원회 구성 시기가 명확하지 않았다. 특히 당시에는 정비예정구역을 지정받으면 추진위를 설립한 후 민간이 구역지정을 신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추진위원회에서는 관행적으로 구역지정을 받기 전에 조합설립동의서를 징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문제는 구역지정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동의서를 징구하다보니 신규건물의 설계개요 등이 정해지지 않아 공란으로 두고 향후에 일괄적으로 보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이번 소송이 제기된 용호2구역도 추진위원회를 설립한 후 정비구역이 지정됐고, 조합설립동의서는 주요 내용이 공란인 상태로 추진위에 제출됐다. 하지만 대법원이 공란 보충권한을 위임받은 동의서가 유효하다고 판결함에 따라 용호2구역과 유사한 절차로 조합을 설립한 구역들에게 구제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법무법인 산하의 김경태 변호사는 “정비구역 지정 전에 신축건물의 설계개요나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등을 특정해 조합설립동의서를 징구한다면, 정비구역이 지정된 후 해당 내용들이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럴 경우 동의서를 새롭게 징구해야하기 때문에 신속한 사업진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구역지정 고시 등으로 인해 변동될 가능성이 높은 동의서 기재내용을 토지등소유자의 위임을 받아 기재하는 것이 적법하다는 취지”라며 “토지등소유자의 조합설립동의에 대한 정확한 의사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신속한 사업진행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박일규 변호사는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토지등소유자의 개별 동의를 통해 공란보충 권한을 위임받았다면 조합설립동의서가 적법하게 완성, 제출되어 유효하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며 “과거에 관행적으로 이뤄진 조합설립에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은 지난 2009년 〈도정법〉이 개정되기 전에 조합설립인가가 진행된 곳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서 위임 동의서는 사실상 무효라는 것이다.
법무법인 동인의 맹신균 변호사는 “용호2구역의 판결 사례는 그동안 많은 조합이 관행에 따라 동의서를 공란 또는 임의보충한 것에 대한 정책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조합을 무효로 판단하지 않기 위해 총회결의에 따라 동의서를 보충한 점을 고려한 것이므로 공란동의서를 징구하는 것 자체를 유효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정착된 실무관행에 따라 동의서의 개략적인 비용부분을 창립총회에서 확정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며 “2008년 이전에 제기된 유사한 사건의 경우에 한해 유효하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국토의 김조영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공란을 보충할 수 있는 권한을 동의서 제출자가 추진위에 위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공란동의서를 징구한 뒤 추진위원회가 임의로 보충하는 것은 지금도 무효라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에 확대 해석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의했다.
심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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