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리포트> 배꼽이 큰 현금청산의 진실
하우징헤럴드 2013.11.28
“집 대신 돈달라”… 현금청산이 사업 ‘발목’
청산 피해는 결국 남은 조합원들에게 전가
현금청산→일반분양→미분양→부담금 증가 ‘악순환’
‘관리처분인가 후 90일’ 도정법 개정 논의도 ‘안갯속’
“부동산 경기침체로 현금청산을 선택하는 조합원들이 너무 많아 아예 사업을 진행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분양신청까지 마치고 철회하거나 계약을 하지 않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남아 있는 조합원들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나 살고 너 죽자’는 식의 현금청산 문제는 사업을 존폐위기로 내몰고 있습니다.
” 최근 N조합은 사업진행 여부를 두고 조합원 총회를 가졌다. 결과는 계속 진행하자는 쪽이었다. 하지만 사업성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안 하면 남아 있는 조합원들도 모두 망하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이다. N조합의 시공권을 따기 위해 건설사들이 각축전을 벌이던 곳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주민간의 갈등이다. 수주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지지하는 건설사별로 주민들이 갈렸고, 사업시기를 놓치면서 구렁텅이로 빠진 것이다. 여기에 현금청산자들이 급증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이미 현금청산금액이 권리가액을 넘어서는 역전현상도 일어났다. N조합의 현금청산 행렬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조합원들도 현금청산에 나서고 있다.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N조합은 이제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이 돼 버렸다.
재개발·재건축 분양 대신 현금청산을 요구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불경기에는 집 대신 돈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현금청산 비율이 너무 높아 지방에서는 아예 사업을 중단한 곳도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단지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최근 관리처분계획을 준비중인 K조합의 경우 전체 조합원의 10%가 현금청산을 신청했다. 분양계약 체결 시점에서 이 수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조합은 보고 있다. 일부 부동산중개업소들도 조합에서 탈퇴하는 게 손해를 줄이는 길이라며 현금청산을 유도하고 있다.
청산금 관련 소송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제기된 청산금 관련 행정소송은 32건으로 2006년 4건과 비교하면 8배로 늘어났다. 서울행정법원에만 지난해 16건의 청산금 소송이 들어와 단 1건만 들어왔던 지난 2006년과 비교된다.
분양신청 후 분양권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당연히 현금청산자가 많아진다. 문제는 현금청산으로 인해 사업이 붕괴될 위기까지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분양신청 이후에도 현금청산 길을 열어 놓은 규정이 문제가 되고 있다.
분양신청을 했다는 것은 분양을 받아 입주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인데 이를 번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외부 투기세력에게 유리한 규정이다. 실제로 뒤늦게 현금청산을 할 경우 남아 있는 조합원들에게 부담이 고스란히 돌아간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재건축의 경우 현금청산 자체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재건축의 경우 재개발과 달리 임의조합원 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조합설립 시점에 사업에 동참하겠다고 스스로 선택한 이상 손해가 나는 경우에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그나마 현금청산을 신청한 조합원들은 현금청산 시점을 기준으로 그때까지 조합이 사용한 각종 사업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판례가 위안이 되고 있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현금청산은 조합이 원활한 사업진행을 위해 정비사업에 동의하고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조합원들에게 토지 또는 건축물 등 권리를 취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 지위를 상실할 때까지 발생한 조합의 사업비용 중 조합원으로서 부담했어야 할 금원도 고려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렇듯 현금청산의 문제점에 대해 정부도 인식을 같이 하고 법 개정에 나섰지만 여전히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정부의 4·1 부동산대책에 포함된 현금청산 시기 연장 조치는 최근 여·야간 힘겨루기가 계속되면서 본회의 심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현금청산 시기를 관리처분인가 시점으로 일원화하면서 그 기산일을 관리처분인가일의 다음날부터 90일 이내(현행 150일)로 단축함으로써 조합의 현금청산대금 조달을 용이하게 하고 금융비용 절감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최근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한 것은 재개발·재건축 사업 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마찬가지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을 향한 재개발·재건축 원주민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노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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