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사업이 멈춰 있는 서울시의 한 재개발 구역 골목에 행인들이 지나고 있다. 서울시는 정비사업 관련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운영 실태 점검을 확대하는 한편 상시감시를 위해 공공관리제도를 강화한다. /서울경제DB |
4곳 점검 횡령의혹 등 드러나… 구청장에 현장조사권 부여 '공공관리' 강화
사업 2년 이상 진척없는 180개 구역 대상 조사 확대
2년마다 정기감사 의무화도
서울시가 정비구역 조합의 비리 척결에 나선다. 조합 운영실태 현장 점검을 강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구청장에게 현장조사권을 부여해 상시로 운영 비리를 감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서울 소재 정비구역 4곳에 대해 시범적으로 실시했던 조합 운영실태 점검 결과 다수의 비리혐의가 적발됐다며 기존 공공관리제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라고 17일 밝혔다.
서울시의 운영실태 점검결과는 충격적이다. 서대문구의 H 재개발 정비조합은 조합장과 여직원을 포함해 상근직원이 2명에 불과하지만 이 2명이 쓴 한 달 식사비용만 380만원, 지난해 4,600만원이 지출됐다. 마포구 소재 Y 조합은 하루에 빵값으로만 48만원을 썼다. 이를 증명하는 첨부서류는 3만원 이하 간이영수증이 16장 붙어 있을 뿐이다. 이곳 조합장은 개인차입금 4억6,000만원을 조합의 변제금으로 처리해 횡령 의혹도 일고 있다.
노원구 소재 뉴타운의 한 재개발구역 추진위원회는 추진위 설립 이후 5년간 단 한 번의 총회도 개최하지 않았음에도 4억원의 운영비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선 서울시는 이번에 적발된 사안을 수사 의뢰하거나 법적 절차를 거쳐 고발·환수할 방침이다.
향후 운영실태 조사 대상이 되는 곳은 추진 주체가 있는 406개 정비구역 중 사업이 2년 이상 지연되고 있는 180곳이다. 사업 진척도 없이 조합이 인건비 관리비 등으로 사용 비용을 지출하면서 주민 부담이 가중되는 곳들이다.
조합 단계나 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인가 단계의 구역의 경우에는 지출 비용이 더욱 막대하다. 2년 이상 지연된 180개 구역 중 추진위 단계에 있는 81개구역이 쓴 평균 비용은 11억8,000만원이다. 조합 단계는 31억4,000만원, 사업시행인가 단계는 60억1,000만원에 달한다.
사업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않음에도 수십억원의 비용을 썼지만 제대로 된 감시 한 번 받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사업자 등록도 없이 추진위원회의 자금이 위원장 개인 통장으로 관리된 사례도 허다했다.
서울시는 운영실태 점검과 동시에 제도적 보완도 병행한다. 우선 유명무실한 공공관리제를 대폭 강화한다. 공공관리제도란 자치구청장이 재개발·재건축 사업 과정에 공공관리자로서 조합 임원의 선출이나 시공사 선정 등 사업 각 단계에 개입해 투명한 사업진행을 돕는 제도를 말한다.
하지만 공공관리제도는 사실상 조합의 운영비리를 감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또 2010년 시행 당시 시공사를 선정한 구역을 제외하면서 전체 정비구역의 반 정도가 공공관리제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다.
신공공관리제는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구청장에게 합동점검반을 구성해 현장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상시적으로 조합의 운영실태를 점검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다.
또 투명한 회계를 위해 관련 법령 개정도 추진한다.
우선 현재 준공까지 3회만 외부 회계감사를 받도록 돼 있는 법을 2년 주기로 정기감사를 의무화할 수 있도록 바꾼다. 추진위원장 개인 용도로 사업자금이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추진위원회 사업등록도 의무화한다. 또 기준이 없어 자의적인 회계가 가능했던 기존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회계처리 기준도 마련한다.
사업추진 없이 운영비를 지출하는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업무추진 실적을 주민에게 주기적으로 통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시는 조합이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할 방침이다.
이건기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현장점검 결과 조합원들이 분명한 위법행위를 관행 정도로 오해할 만큼 원칙과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며 "부조리한 조합운영으로 주민들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시가 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시행하고 관련 법령 개정을 위해 중앙정부에 적극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