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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현장/사진=허경 기자 © News1 |
서울시, "'돈' 둘러싼 분쟁 해소, 뉴타운 출구전략 속도 낼 것"
(서울=뉴스1) 임해중 기자 = 뉴타운 구역이 해제될 경우 사업에 참여한 관련기업들이 투입한 비용에 대한 채권을 포기하면 이중 일부를 세금감면을 통해 보전해줄 수 있는 법적근거가 마련됐다. 매몰비용을 둘러싼 조합과 관련기업들의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조합 입장에서는 사업해산을 보다 손쉽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지지부진하던 뉴타운 출구전략이 본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게 서울시와 정부의 기대다.
반면 관련기업들과 조합 관계자들은 세금감면을 통해 손실을 일부 보전해주는 방식은 매몰비용 처리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반응들이다. 이번 조치의 경우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매몰비용 '회수 포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비용 일부를 보전받기 위해 수십억 원에 달하는 채권을 모두 포기하는 기업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추진위나 조합이 해산할 경우, 자금을 빌려준 정비업체나 건설기업이 투입한 비용을 손실로 처리하면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일부 개정안'이 전날 새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개발·재건축은 사업시행자인 추진위나 조합의 재정여력이 없기 때문에 관련기업이 영수증을 받고 대여금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자금이 조달된다. 추진위 단계에서는 정비업체가 자금을 지원하고 시공기업이 선정되면 해당 기업이 돈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문제는 사업이 해산될 경우 이 대여금이 사업시행자가 갚아야 할 일종의 악성채권으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뉴타운 출구전략이 진행되며 자금회수를 위해 관련기업이 추진위나 조합 등 주민들 재산을 압류하는 경우가 발생해 정비사업장 분쟁의 원인이 돼왔다.
이번 개정안은 법인세법 19조에 규정된 기업의 손실처리 요건을 특례 규정을 통해 완화해 재개발·재건축에 참여한 기업들이 비용의 일부를 회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기업이 법인세 감면을 받기 위해서는 법인세법에 따라 법원판결 등을 통해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이라는 점을 입증해야만 한다. 조특법 개정안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한해서 기업이 빌려준 돈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면 '입증'이 되지 않아도 이 금액을 손실처리 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매몰비용을 손실처리하면 법인세를 절감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법인세는 기업 매출액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세율은 22%다. 2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기업이라면 440억원을 법인세로 납부해야 한다. 이 기업이 A라는 재개발·재건축에 50억원을 투입했고 이 사업장이 해산수순을 밟게 되면 투입된 비용 전체를 손실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법인세는 매출액 1950억원을 기준으로 429억원만 납부하면 돼 결과적으로 손실처리한 비용 50억원의 22%인 11억원을 간접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효과가 생긴다.
매몰비용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서울시는 이번 법안 처리에 반색하는 모습이다.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조합설립 이후 단계의 구역이 사업해산 수순을 밟을 경우 매몰비용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추진위 단계의 사업장의 경우 평균 3억8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합이 설립된 이후 구역의 평균 사업비는 50억원 정도로 이들 지역의 사업이 해산되면 매몰비용 처리를 놓고 현장의 반발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서울시 측 우려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추진주체가 있을 경우 사업이 해산되면 관련기업들이 조합원의 재산을 압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회수해 현장 곳곳에서 원성이 높았다"며 "매몰비용을 둘러싼 조합과 관련기업의 분쟁이 줄면 뉴타운 출구전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서울시가 뉴타운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구역 중 조합이 설립된 곳은 88곳, 추진위는 53곳이다. 추진주체가 있는 사업장의 60% 이상이 조합설립 이후 단계라 매몰비용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서울시 입장에서는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반면 관련기업과 조합 관계자들은 이번 조치가 매몰비용을 둘러싼 분쟁해소에 별반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들이다. 투입된 비용의 78%는 손해로 떠안으라는 의미라 매몰비용을 손실로 처리하는 기업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비업체의 한 관계자는 "보통 시공기업이 선정되기 전까지 5억원 정도의 자금을 대여해준다"면서 "정비업체의 자본금은 보통 10억원 미만이라 빌려준 돈의 80%를 책임지라는 것은 망하라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한 건설기업 관계자 역시 "금융비용 부담에도 조합이나 추진위에 돈을 빌려주는 이유는 분양을 통해 일정 수익 이상을 회수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금융비용은 날리더라도 원금은 회수해야하는데 재산 압류 등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굳이 채권을 포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조합 관계자들도 법인세 감면으로 매몰비용 부담 문제를 해소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이 빌려준 돈을 손실로 처리해주면 조합의 매몰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건설기업들이 채권을 포기하지 않게 되면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재개발 조합의 관계자는 "조합이 설립된 사업장은 이미 수십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는데 기업들이 이 돈을 포기하고 손실로 처리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관련기업이 조합원들의 재산을 가압류하는 식으로 비용을 회수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법인세 감면 이후 남은 나머지 비용을 정부나 지자체가 좀 더 보전해주는 등의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